미국과 중국이 상호 간 핵무기 통제를 목표로 한 핵 군축 대화를 갖기로 했다. 양국 당국자가 핵 군축을 의제로 만나는 것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시절 이후로 처음으로 '핵 3강'이라 불리는 미국·중국·러시아가 핵 군축 대화를 다시 시작하는 동력이 될지 주목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 조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오는 6일 미중이 워싱턴에서 핵 군축을 논의한다"고 보도했다. 이번 대화에는 말로리 스튜어트 미 국무부 군비통제검증이행 담당 차관보와 쑨샤오보 중국 외교부 군축사 사장이 각각 대표로 나선다. WSJ는 "이번 만남이 공식적인 협상 개시라고 보긴 어렵지만, 미국은 중국의 핵 전력 상황과 정책 기조 등을 파악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바마 행정부(2009~2017년)까지 간헐적으로 이뤄졌던 미중의 핵 군축 논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이후 완전히 끊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진행되고 있던 핵무기 통제 논의에 중국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핵무기 증강에 열을 올리던 중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도 취임 첫해인 2021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화상 대화에서 "전략적 안정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자"며 사실상 군축 대화를 제안한 바 있다. 중국은 미국이 핵 전력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의도라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
중국이 이번 대화에 호응한 것은 미국과 핵 군축 문제를 논의할 때가 됐다는 일종의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미 국방부의 '2022 중국 군사·안보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핵탄두 보유량은 현재 400기에서 2035년쯤 1,500기로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의 보유량(5,500기)보다는 적지만 러시아(6,000기)와 합치면 미국을 압도하는 규모다.
미국은 최근 몇 년간 미중러 3국의 핵 군축 시스템 구축에 공을 들였다. 미국과 러시아는 2010년 신(新)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을 체결, 양국이 배치할 수 있는 전략급 핵탄두를 1,550기로 제한했다. 새로운 핵 강대국으로 부상 중인 중국을 핵 군축 논의에 끌어들이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지난 2월 러시아가 "뉴스타트 참여의 중단"을 선언하며 3국 간 군축 대화는 더욱 멀어지는 듯했다.
중국이 대화 의지를 드러내면서 미중러 3국의 핵 군축 논의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WSJ에 "미국은 뉴스타트 이후의 핵 군축 논의의 틀을 살펴보기 위한 대화를 시작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미중의 이번 워싱턴 핵 군축 대화는 오는 11~1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릴 전망인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뤄진다. 자오퉁 카네기칭화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미중 정상회담을 위한 더 나은 정치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양측이 이번 군축 회담에 합의했다"며 핵 군축 회담 자체가 성과를 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했다. 실질적인 핵 군축 협상으로 이어질지 여부는 두고 봐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