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이 줄어도, 다른 환전 방법이 늘어도 사설 환전소는 성행 중이다. 인터넷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환전할 수 있는 여러 대안이 생겨났지만 환전소는 여전히 전국에서 1,480곳(2022년 말 기준)이 영업하고 있다. 1,75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한 2019년 1,663곳이던 환전소 수는 외국인 관광객이 97만 명에 그친 2021년(1,515곳)에도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세관당국은 관광객보다는, 국내 거주 외국인 덕에 사설 환전소 규모가 유지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를 자주 오가는 외국인 입장에서 은행보다 적은 환전소의 환전수수료는 매력적이다. 올해 8월 기준 은행에선 775.77달러를 내야 한화 100만 원으로 바꿀 수 있었지만, 환전소에선 이보다 낮은 765.11달러만 주면 됐다.
그중에서도 불법체류자는 사설 환전소의 단골고객이다. 신분증 검사 등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불법체류자나 국내 계좌가 없는 외국인 근로자는 중국인‧조선족이 운영하는 환전소를 선호한다. 실제 전국의 외국인 운영 환전소 270곳(올해 7월 기준) 중 대부분이 이주노동자가 많은 곳에 몰려 있다. 대림동 차이나타운이 있는 서울 영등포구가 37곳으로 가장 많고 이어 구로구(32곳)‧중구(24곳), 경기 안산(18곳)‧평택(10곳) 순이다. 2017년 25만1,000명이던 불법체류자 수는 42만6,000명(올해 6월)까지 늘었다.
박동철 관세청 서울세관 외환조사과 팀장은 “불법체류자는 해외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낼 때 환전소를 이용할 수밖에 없고, 국내 계좌가 있어도 환전소를 거쳐 환치기(불법 송금)하는 경우가 많다”며 “은행을 통할 경우 소득 행위가 기록에 남아 세금을 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환전소가 해외로 돈을 보내거나, 해외에서 돈을 받아주는 건 불법이지만 이 같은 환치기는 이미 범죄 수익의 주요 해외 이전 통로로 쓰이고 있다. 앞서 지난해 1~10월 경기남부경찰청은 집중단속을 통해 무등록 환전소 92곳을 적발했다. 이곳에선 2021년 11월부터 1년 동안 약 670억 원이 해외로 불법 송금됐으며, 해당 금액 중 상당 부분은 보이스피싱 피해액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대포통장‧대포폰 등과 함께 불법 송금은 보이스피싱 8대 범행 수단으로 꼽힌다. 대만 국적 피의자들이 중국에서 밀수입한 금괴 약 27㎏을 국내에서 판 뒤 수익을 중국인이 운영하는 서울 구로구 소재 환전소를 통해 송금하다가 덜미를 잡힌 사례도 있다.
최근 5년(2019년~올해 8월)간 적발된 불법외환거래가 13조 원에 달한다는 점에 미뤄볼 때 지하 환전시장의 불법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관세청은 보고 있다. 특히 환치기·외화 밀반출 등 외환 사범을 통한 적발금액이 96.4%(12조6,622억 원)에 달하는 만큼 환전소의 자금 세탁 역할이 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 팀장은 “해외 송금 요청액이 수억 원이면 환전소도 부담스러워하지만 2,000만~3,000만 원으로 쪼개 여러 곳에 부탁하면 송금을 해 주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 문제가 되는 마약 구매자금 역시 이런 식으로 흘러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