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 표현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기소 8년 만, 상고 접수 6년 만에 법원이 내린 최종 결론이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 명예교수에게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26일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박 명예교수는 2013년 출간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이옥선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9명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2015년 11월 기소됐다. 검찰은 박 명예교수가 책에서 쓴 △"위안부의 본질은 매춘" △"위안부들은 일본 또는 일본군의 애국적 협력자로서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 △"위안부 강제동원이 없었다" 등의 표현을 허위로 봤다. 또 "1996년 시점에 위안부란 근본적으로 매춘의 틀 안에 있던 여성들"이라거나 "조선인 위안부는 피해자였지만 식민지인으로서 협력자이기도 했다" 등 총 35개 표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박 명예교수는 "위안부는 전시에 강제매춘과 성폭력을 겪었다"는 1996년 유엔 인권위원회 보고서 내용을 근거로 이같이 주장했다.
심급별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2017년 1월 "박 명예교수가 피해자들의 사회적 평가를 침해하는 사실을 적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의성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옳고 그름의 판단은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상호 검증과 논박을 거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항소심에선 "박 명예교수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허위사실을 교묘히 적시했다"며 유죄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박 명예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이 문제 삼은 표현은 객관적으로 증명되는 사실이 아닌 '학문적 주장'이라는 이유가 컸다. 대법원은 "각 표현은 위안부라는 집단에 대한 추상적 표현으로 각각의 피해자에 관한 구체적 사실이 아니다"라며 "강제연행 서술은 학문적 개념이 전제로 깔려 있어 사실 기재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일부 문구만으로는 '위안부들이 일본군에 애국적으로 협력했다'는 명제도 이끌어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집필 경위와 의도를 보면 문제의 표현이 학문적 의견이라는 점이 더욱 뚜렷해진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박 명예교수는 일본의 책임에만 주목해 양국 간 갈등을 키우는 건 위안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주제의식을 부각하려 했다"면서 "책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존엄을 경시한 사정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학문적 표현물 평가는 형사처벌보다는 원칙적으로 공개적 토론과 비판 과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선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법원이 이날 형사재판 결론을 내리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박 명예교수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도 7년 만에 재개될 전망이다. 서울동부지법은 2016년 1월 "위안부의 역할에 대해 '애국', '협력', '동지' 등의 표현을 사용한 건 원고들의 인격권 침해"라며 박 명예교수가 원고 1명당 1,000만 원씩 총 9,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현재 서울고법에서 진행 중인 항소심은 2017년 3월 1차 변론이 마지막이었다. 다음 변론 기일은 내달 22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