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사망 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SPC그룹과 DL그룹의 회장들이 오는 26일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되고도 '해외 출장'을 이유로 불출석하기로 했다. 노동계는 "국민의 생명과 국회의 권능을 우습게 아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등에 따르면 전날 허영인 SPC 회장과 이해욱 DL그룹 회장은 국회에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 허 회장은 "K푸드 세계화와 함께 SPC그룹의 글로벌 사업 확장을 목표로 미리 계획된 불가피한 해외 출장"이라며 "대한민국 식품 산업의 세계화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노력을 헤아려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황재복 SPC 대표이사가 대신 출석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회장은 "8월부터 계획된 일정에 따라 해외 출장 중"이라며 "금주부터 국가와 기업 발전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미래 신기술 분야 기술 확보와 신규 사업 기회에 대한 논의가 있다"고 밝혔다.
당초 환노위는 26일 열리는 고용노동부 종합감사에서 두 총수를 증인으로 불러 산하 계열사에서 발생한 중대재해와 관련해 안전관리 부실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할 계획이었다. 앞서 12일 DL그룹 산하 건설사인 디엘이앤씨의 마창민 대표, SPC 계열사 샤니의 이강섭 대표가 국감장에 불려 나왔지만 국회가 다시 두 그룹 총수를 증인으로 채택한 것은 실질적 경영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자는 취지였다.
SPC그룹은 지난해 10월 계열사인 SPL 평택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후 허 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와 함께 1,000억 원 규모의 안전경영 투자를 약속했다. 하지만 올해 8월에 샤니 성남 제빵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또 끼임 사고로 숨졌다. 디엘이앤씨는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래 노동자 8명이 숨져 '중대재해 1위 기업'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디엘이앤씨 시민대책위와 파바공동행동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디엘이앤씨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돈벌이를 위해서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은 얼마든지 뒷전으로 미루고 희생해도 된다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며 "이해욱·허영인 회장은 해외 출장을 취소하고 국정감사에 당장 출석하라"고 규탄했다.
권영국 시민대책위 집행위원장은 "국회법과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반드시 국회 청문회를 열어 이들을 증인으로 세워야 한다"고 요구했다. 임종린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은 "사유서에 안전 대책을 강화하겠다고 구구절절 써놨지만 12일 샤니 대표가 국감에 불려나가 자신은 권한이 없다는 말을 반복하고 며칠 뒤 또 SPL에서 끼임 사고가 났다"며 "반복되는 산재를 해외 출장으로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말이냐"고 꼬집었다.
두 회장의 불출석 통보에 야당은 형사 고발 조치, 청문회 개최 등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회증언감정법에 따르면 정당한 이유 없이 국정감사에 불출석한 증인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3,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대기업 총수들은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국감장 불출석 후 벌금을 내는 게 관례처럼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