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고 고상돈(1948∼1979) 대원 등을 이끌고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산(8,848m) 등정에 성공한 김영도(金永棹) 전 의원이 21일 경기도 의정부 자택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아시아산악연맹(회장 이인정)이 전했다. 향년 99세.
1924년 10월 18일 평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3년 정치에 입문해 1973∼1979년 제9대 국회에서 유신정우회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1971년 히말라야 로체샤르 원정(대장 박철암) 비용을 지원해 준 것을 계기로 1971∼1976년 대한산악연맹 부회장, 1976년 10월∼1980년 12월 제7대 회장을 역임했다.
회장 임기 중인 1977년 9월 15일 한국 등반대(18명)를 이끌고 세계 8번째(국가 기준)로 에베레스트산 등정이라는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1973년 12월 네팔 당국으로부터 '1977년 가을·몬순기(9∼11월)에 입산'해도 된다는 허가서를 받고 대한산악연맹을 중심으로 '77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꾸려 훈련에 들어갔지만 문제는 경비였다. 고인이 고심 끝에 찾아간 곳은 한국일보였다. 당시 본보 특파 기자로 동행했던 이태영씨는 훗날 “(김영도씨가) 체육에 조예가 깊고 외교와 정치 다방면에 수완이 남다른 한국일보를 찾아가 ‘우리 숙원이 있다’고 읍소했더니 흔쾌히 도움을 약속했다고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46년 전 6,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마련해 원정대를 지원했다.
이렇게 모인 18명의 대원들은 네팔 입국허가를 받은 1973년부터 ‘특수 훈련’에 돌입했다. 원정은 1977년 6월 16일 선발대가 출발해 100여 일이나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이태영씨는 “국산 장비만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본에 가서 사기도 했고, 현장에서 다른 산악 원정대가 남겨 놓은 산소통을 주워 쓰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결국 18명의 ‘특수 부대’는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정상 등정에 성공하고 돌아와 국가적인 영웅이 됐다. 이태영씨는 “동아일보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1면에 명단이 실렸다. 경쟁 관계를 떠나 그만큼 국가적인 대사이자 한국 등반사에 역사적인 일이었다”고 말했다. 10월 6일 귀국했을 때는 김포공항에서 서울 시내까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처럼 카퍼레이드를 벌였고, 닷새 뒤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로 불러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여했다. 국회에서도 환영인사가 있었다. 1977년 10월 10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 소속 김수한 의원(6선, 전 국회의장)이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우리 민족의 강인한 의지력과 불굴의 기혼(氣魂)을 세계에 과시한 김영도 에베레스트 원정 대장에게 국민의 이름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내자”고 말해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고인은 대한산악연맹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2012년에 선정한 '대한산악연맹을 빛낸 50인'에 포함됐고, 별세 하루 전인 20일 울주국제산악영화제에서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7호실이며 발인은 24일 오전 7시 30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