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직항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도시인 미국 애틀랜타. 이동 거리는 1만2,547km, 비행시간만 13시간 50분이 걸리지만 애틀랜타가 있는 조지아주는 우리 기업들이 미국 진출을 고려할 때 1순위로 꼽는 지역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스타트업의 메카 실리콘밸리, 세계 금융의 수도 뉴욕,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가 아닌 조지아, 텍사스 등 미국 경제가 남부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다. 기업 유치에 사활이 걸린 우리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도 조지아주가 어떻게 주요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냈는지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밥 코젝(Bob Kosek) 조지아주 경제 개발국 글로벌커머스 본부장은 11일(현지시간) 애틀랜타 중심부의 한 건물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기업들은 비즈니스 친화적 환경, 물류상 이점, 높은 삶의 질 때문에 다른 주보다 조지아를 선택하고 있다"며 "조지아는 기업을 위한 종합 패키지"라고 자랑했다.
조지아주에 따르면 이 지역을 찾아온 한국 기업은 144개. 지난 10년 동안 투자 규모는 236억 달러(약 31조 원)를 넘어섰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에 이어 조 바이든 정권에서도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면서 국내 기업의 진출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기아는 2009년부터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에 생산 공장을 가동했으며 현대차는 2025년까지 조지아주 최초 전기차 전용 제조 시설에 55억 달러(약 7조4,000억 원)를 투자한다. 또 SK온과 LG에너지솔루션은 각각 현대차와 6조5,000억 원, 2조6,500억 원을 투자해 배터리 합작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한화솔루션은 태양광 모듈 제조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3조2,000억 원을 투자한다. 뚜레쥬르도 미국에 대규모 제빵공장을 짓고 더 많은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9월 조지아주에 공장 설립을 위한 부지 선정을 마친 상태로 2025년 완공 예정이다.
미국 현지 기업들 역시 조지아에 더 많은 생산 기지를 마련하는 중이다. 조지아는 미국에서 세 번째로 포천 500대 기업의 본사가 많은 지역이며 미국의 투자 입지 관련 전문지 아레아 디벨롭먼트가 발표하는 기업하기 좋은 주에서 2014년 이후 10년 연속 종합 순위 1위에 올랐다.
조지아가 이처럼 기업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이유는 뭘까. 미국 투자를 결정한 재계 관계자는 "조지아는 인력, 정책적 지원, 물류 등 모든 분야에서 골고루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조지아주 경제개발부는 기업들이 부지 선정부터 사업 허가, 인프라 회사와 연계, 투자 인센티브 정보 등을 원스톱으로 해결하게 돕는다. 특히 '신속한 개발을 위한 준비'(Georgia Ready for Accelerated Development, GRAD) 프로그램을 통해 공장이나 사무실을 지을 수 있는 산업용 용지 정보를 먼저 제안한다. 이미 주 정부 차원에서 환경영향평가 등 각종 인허가를 마친 부지인 만큼 기업이 결정만 하면 일사천리로 공사에 들어갈 수 있다. 실제 한화솔루션의 경우 3월 조지아 주 정부로부터 태양광 패널 제조 부지에 대한 인허가를 받은 직후 공사에 들어갔고 내년 4월 가동을 계획하고 있다.
양질의 노동력도 빼놓을 수 없다. 2010~2020년 사이 조지아의 인구 증가율은 미국 평균 증가율(7.4%)보다 높은 10.6%를 기록했다. 평균 연령도 36.4세로 미국 전체와 비교하면 4% 젊다. 세계 10위권에 들어가는 조지아 공과대를 비롯해 해마다 10만 명 이상의 이공계 전문 인력도 배출하고 있다.
조지아주 경제개발부에서는 전문 인력과 투자 기업을 효과적으로 연계하는 '퀵 스타트'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구체적 기술을 지역 대학에서 무상으로 훈련시켜 업무에 바로 투입될 수 있게 한다. 코젝 본부장은 "조지아의 기술대학 시스템을 통해 기업을 위한 맞춤형 교육을 한다"며 "회사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회사가 원하는 기술이 뭔지 기존 인력과 회사가 필요로 하는 기술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가 뭔지 파악하고 관련 커리큘럼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미국 전역으로 뻗은 교통망도 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모으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파나마 운하와 가까운 만큼 조지아 최대 항구인 사바나 항만은 미국 전체 물동량 4위의 항구다. 또 브런즈윅 항만은 주요 자동차 수입국인 멕시코와 인접해 있어 미국에서 자동차 수입이 가장 많이 들어오고 있다. 기아 및 현대 자동차, 메르세데스-벤츠 등 주요 자동차 제조 공장들이 항구 주변에 있는 이유기도 하다.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은 전 세계 여객 수송 1위다.
조지아는 피고용인에 대한 노조 가입이나 조합비 납부를 강제할 수 없도록 하는 노동권 법을 채택했다. 2021년 기준 노조 가입률은 4.8%로 미국 전체 노조 가입률(10.3%)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다. 법인세율 역시 지난 50년 동안 6% 수준이었으며 2019년에는 5.75%로 낮췄다. 테크 기업이 몰려 있는 캘리포니아주 법인세 최고세율은 8.8%다.
이러다 보니 조지아로 이주한 한국인들도 크게 늘고 있다. 조지아에 사는 한인은 2021년 기준 9만3,000명 수준으로 미국에서 한인 인구가 세 번째로 많다.
한 재계 관계자는 "투자를 문의하는 기업들이 워낙 많아 요즘에는 조지아주 관계자들의 콧대도 좀 높아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며 "어떻게 하면 기업을 효과적으로 유치할 수 있는지 조지아주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