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윤석열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엿새 만의 첫 공식 만남이다. 윤 대통령이 여당에 "차분하고 지혜로운 변화"를 주문한 만큼 숙제를 받아든 김 대표의 발길이 가벼울 수 없는 자리다.
당 내부는 여전히 뒤숭숭하다. 김 대표 리더십이 더 흔들릴 경우 비상대책위 체제로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과 조우했다. 김 위원장은 구원투수 격인 당 비대위원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이다.
김 대표는 3월 취임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당내에서 사퇴 요구가 공공연할 정도다. △임명직 당직자 교체 △당 혁신기구와 총선 준비기구 조기 출범 선언으로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안정적인 재신임과는 거리가 멀다.
한 비영남권 재선 의원은 본보 통화에서 "유권자들은 쇄신안의 구체적 내용보다는 간판이 바뀌는지를 두고 쇄신 의지를 평가한다"고 한계를 짚었다. 또 다른 중진 의원은 "곧 발표한다는 혁신 기구의 권한과 인선 등을 우선 지켜보겠다"고 판단을 유보했다. '조건부 재신임'이라는 뜻이다.
원외 인사들의 압박도 이어졌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에 "(총선 승리를 위해) 영남권 중진 의원들의 용퇴를 권고하는 게 맞다"면서 "그런 물갈이 공천을 하려면 우선 지도부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며 김 대표의 2선 후퇴를 요구했다.
물론 원내에선 김 대표 체제에 힘을 싣는 목소리가 많다. 당 주류인 영남권 의원들이 공천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친윤석열계 실세 인사들의 영향력이 컸던 이전과 비교해 김 대표가 운신할 폭이 넓어졌다는 시각도 있다. 윤희석 당 선임대변인은 통화에서 "이런 점에서 '김기현 2기 지도부'가 아닌 '김기현 비상대책위'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김 대표가 연말까지 당 지지율을 반등시키지 못하면 교체론은 다시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한 초선 의원은 "김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두 달"이라고 말했다.
이날 김 대표가 윤 대통령이 주관한 자리에서 만난 김 위원장이 주목받는 이유다. 윤 대통령과 수시로 독대할 만큼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2013년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내는 등 정치 경력 대부분을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쌓아 중도 외연 확장성도 갖췄다. '영남당에 갇혔다'는 지적이 비등한 김 대표와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여당 쇄신책의 하나로 '신당 창당'이라는 극약 처방까지 거론된다. 창당과 합당 경험이 많은 김 위원장이 더욱 주목받는 배경이다. 다만 회의적 시선도 적지 않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여당엔 그렇게 인재가 없느냐'는 당내 반발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여당 인사는 "신당 창당은 대통령 지지율이 높아서 다른 당에서 넘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 가능한 시나리오"라며 거리를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