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중지, 직원 총동원"… '곳간 바닥'에 난리 난 지방

입력
2023.10.18 04:30
1면
[세수 펑크 후폭풍]
지방재원 교부세 11.6조↓
SOC 등 사업 축소 불가피
비상금 없는 곳도 수두룩

# 전남 고흥군은 지난달 22일 '지방교부세 미송금 및 감액에 따른 건전재정 운용 강조 사항'이란 공문을 각 부서에 보냈다. 올해 세수 펑크로 지방교부세가 쪼그라들자 세운 대책이다. 지방교부세 축소를 '감액'이라고 한 중앙 정부와 달리 고흥군은 '미송금'이란 단어를 앞세웠다. 지방교부세 감소 원인을 돈을 보내지 않은 중앙 정부에 돌리는 표현이다.

# 전북 전주시는 세수 펑크로 모자란 사업비에 투입 가능한 여윳돈인 '재정안정화기금'이 한 푼도 없다. 곳간이 비자 복지 같은 의무지출 사업은 유지하고 대신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에서 예산을 아낄 수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주민과 마찰을 빚고 있는 도로 건설 사업 등이 삭감 대상 1순위다.

# 대구 중구청 세무과는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한 체납액 징수에 전 직원 동원령을 내렸다. 체납액 징수를 책임지는 체납기동팀, 체납정리팀 외에 다른 6개 팀도 관내 동을 할당받아 체납 지방세를 걷기로 했다. 연말까지 담당 지역 체납액의 40% 이상을 확보하는 책임 징수제다.

지방세 부진에 교부세 감액 '이중고'

역대급 세수 펑크에 따른 후폭풍이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휩쓸고 있다. 위 사례뿐 아니라 대다수 지자체가 각종 사업 축소 등 허리띠를 졸라매느라 비상이다. SOC 사업 위축으로 정부가 4분기에 노리고 있는 경기 반등에 일부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17일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국세수입 전망은 341조4,000억 원으로 당초 예상보다 59조1,000억 원 적다. 이에 따라 중앙 정부가 지방 정부 재원으로 주는 지방교부세도 75조3,000억 원에서 63조7,000억 원으로 11조6,000억 원 줄어든다.

항목별 감소액은 교부세 10조6,000억 원, 부동산교부세 1조 원이다. 중앙 정부가 걷은 내국세의 19.24%와 종합부동산세 전액을 지방교부세로 지방 정부에 넘겨야 하는 현행법에 따라서다. 지자체가 이번 지방교부세 감액을 미송금으로 받아들이는 배경이다.

전체 지방교부세가 줄어든 만큼 각 지자체 몫도 작아졌다. 고흥군 지방교부세가 당초 4,550억 원에서 4,032억 원으로 518억 원 감소한 식이다. 재정 자립도가 낮아 지방교부세에 의존하는 지자체일수록 세수 펑크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지방교부세 축소는 올해 지방세 실적도 저조한 가운데 발생해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지자체 살림 밑천인 양대 돈줄이 말랐기 때문이다. 지방세 수입은 상반기 기준 52조4,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5조8,000억 원(-9.9%) 줄었다. 부동산 불황으로 집 거래가 뚝 끊기면서 취득세가 감소한 영향이다.

지자체는 세수 펑크로 올해 계획했던 예산 사업을 대폭 수정하는 상황에 처했다. 정부가 세수 예측을 정교하게 했더라면 치르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당장 지자체는 줄어든 예산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업을 도려내고 있다. 집행률 부진 사업, 4분기 신규 사업 등이 주요 칼질 대상이다.

SOC 위축, 경기 반등 발목 잡을라

지자체별로 보면 광주광역시는 집행률 50% 미만인 사업 예산을 깎았다. 대구광역시는 아직 착공 전인 공사 발주 시기를 내년 이후로 미뤘다. 전주처럼 주민 반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는 공사를 일단 중지하는 지자체도 상당수다.

경기도, 충북 괴산군이 각각 업무추진비, 경상경비 10% 감액 지침을 내렸듯이, 기관 살림살이에 쓰는 비용도 삭감하고 있다. 지출 감소와 함께 총력을 기울이는 건 수입 확대다. 올해분 지방세를 빠짐없이 걷고, 체납 세금 징수에 행정력을 집중한다는 구상이다.

미발주 사업을 추진하지 않기로 한 고흥군 관계자는 "각 사업 부서에 올해 실시하기 어려운 사업이 있는지 예산 부서와 협의해 달라고 했다"며 "체납액 징수율 제고 등 자체 수입 강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지방교부세 감소에 대응해 쓸 수 있는 '비상금'이 없는 건 아니다. 필요시 50~70% 사용 가능한 재정안정화기금 22조7,000억 원, 지난해 쓰고 남은 예산인 세계잉여금 7조 원이다. 얼핏 보면 세수 펑크 대처에 충분해 보이지만 지자체별 규모가 다른 점을 고려해야 한다.

8월 17일 기준 재정안정화기금을 하나도 쌓아두지 못한 지자체는 19곳, 세계잉여금이 없는 곳은 38곳이다. 재정안정화기금에서 꺼내 쓸 수 있는 돈이 10억 원 미만인 지자체도 12곳이다. 비상금이 적을수록 예산 삭감을 통해 세수 펑크를 버텨야 한다. 재정안정화기금 예치금이 없는 전주시 관계자는 "세출 구조조정 강도가 다른 지역보다 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세수 펑크가 지자체에 혼란을 끼치는 걸 넘어 전체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SOC 사업 예산 삭감에 따른 정부 지출 감소가 하반기 경기 반등을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는 세수 펑크의 경기 파급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방 SOC 사업 축소는 건설 경기를 위축시키는 요인이나, 그 효과가 4분기에 한정돼 전체 성장률을 깎아내리는 건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세종= 박경담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