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소련군 최고사령관 게오르기 주코프(Georgy K. Zhukov, 1896~1974)는 ‘전쟁사 마니아’들이 나폴레옹이나 카이사르, 한니발 등과 어깨를 견주는 인물로 평가하는 군사지도자다. 1914년 만 17세로 제국 육군에 입대한 이래 그는 참전한 모든 전쟁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전후 소비에트의 치열한 권력투쟁에서도 2차례나 (준)실각당하는 부침을 겪으면서도 끝내는 부활, 혁명영웅 레닌과 더불어 오늘날 러시아인들이 가장 우러르는 영웅으로 남았다.
그의 명성은 39년 일본 관동군-만주국 군대와의 할힌골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래 2차대전의 주요 전선 즉 모스크바 방위전과 스탈린그라드 전투, 레닌그라드 공성전 등 불리한 여건에서 치른 독일군과의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자신의 조국과 세계를 구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서방 연합군보다 먼저 45년 4월 베를린에 입성했다. 연합군 최고사령관이던 미 육군원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달리, 동부전선의 독불장군이었던 그는 전공을 인정받아 독일 항복문서에 서명을 받은 주인공이 됐고, 그해 붉은광장 전승 퍼레이드 때도 스탈린을 대신해 사열대 중앙에 섰다.
그의 대중적 인기와 군의 압도적 지지를 경계한 스탈린은 47년 그를 전리품 착복 등 억지 혐의로 공식 자아비판을 하게 한 뒤 변방 오데사와 우랄 군관구 사령관으로 좌천시켰다.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 집권기인 55년 국방상에 임명되며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군사 정책을 둘러싼 이견으로 흐루쇼프의 눈 밖에 나면서 57년 10월 26일 쿠데타 기도 혐의로 또 한번 실각했다. 그리고 64년 브레즈네프 집권과 함께 다시 명예를 회복했고, 10년 뒤 붉은 광장의 크렘린 벽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95년 모스크바 국립역사박물관 광장에는 그의 거대한 동상이 섰다. 그를 숙청한 두 서기장도 갖지 못한 영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