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에 출원하는 특허 건수 다섯 건 중 한 건은 외국인이 접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신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단순히 기술 개발뿐 아니라 '기술 거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제인협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6일 '최근 특허 출원 동향과 기술선점 전략'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특허 출원 건은 총 23만8,000건으로 이 중 5만3,885건(22.7%)은 외국인이 접수했다. 국적별로는 미국이 1만7,678건(35%)으로 가장 높았으며 일본 1만3,860건(27%), 유럽 1만2,936건(25%), 중국 6,320건(12%) 순으로 조사됐다.
이 중 국내 특허 취득을 집중 공략하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었다. 최근 5년 동안 우리나라 특허청에 접수된 외국인 특허 출원 건수 연평균 증가율은 △중국 19.1% △미국 8.0% △유럽 0.5% 순으로 늘어났다.
이 같은 흐름은 외국 기업들이 첨단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보고서는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이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확인한 것"이라며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 배터리 분야에서 많은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특허 출원을 통해 국내에서 기술을 선점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밝혔다. 기술패권 경쟁 심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대외 환경이 빠르게 바뀌는 상황에서 외국 기업들이 기술 선점 전략을 패권 경쟁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기술 선점에 실패할 경우 기업이 존폐 위기에 설 수 있는 만큼 특허를 통해 독점적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 퀄컴의 경우 이동통신 표준기술 관련 '표준필수특허'를 통해 매년 약 11조 원의 특허수수료를 올리고 있다. 표준필수 특허 덕분에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모뎀 칩셋을 설계 및 탑재하기 위해 퀄컴에 막대한 기술 로열티를 제공해야 한다.
반면 국내 벤처기업 디지털캐스트는 특허를 통한 독점적 권리 확보에 실패해 결국 사라졌다. 디지털캐스트는 1997년 MP3 플레이어 원천 기술을 개발했지만 특허 무효소송 공격 등으로 국내에서 특허 권리가 축소됐고 특허료 미납에 따른 권리 소멸 이후 미국 업체에 인수합병됐다. 디지털캐스트의 MP3 플레이어 특허권이 유지됐다면 2005∼2010년까지 거뒀을 로열티 수익은 약 3조1,500억 원에 달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고서는 기술을 자체 개발하는 데 이어 기술 거래를 통해 외부 기술을 적극 도입해 핵심 기술을 선점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규석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기업 인수합병(M&A), 투자연계형 기술거래 등 기업이 선호하는 기술거래 방식이 여러 규제로 가로막혔다"며 "정부가 기술거래 중개기관을 효율화하는 등 기술거래 생태계를 조성할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