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지역에 편중된 정당의 창설을 금지하는 정당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한 지역에만 기반을 둔 정당을 용인하면 지역주의를 심화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 조항이 "지역·군소·신생정당의 정치권 진입을 가로막는다"며 위헌성을 지적한 헌법재판관이 더 많았지만, 정족수에는 못미쳐 가까스로 합헌 결정됐다.
헌재는 지역정당을 만들려다 정당법상 등록된 정당이 아니란 이유로 기소 또는 신청 거부된 이들이 정당법 3·4·17·18조 등에 대해 청구한 위헌법률심판·위헌확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합헌 결정했다고 4일 밝혔다. 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으로 봤지만 위헌 결정을 위한 정족수 6명에 이르지 못했다.
정당법상 등록된 정당이 아님에도 '사회변혁노동자당'이란 명칭을 썼단 이유로 재판을 받던 김모씨는 2020년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직접행동영등포당·과천시민정치당·은평민들레당은 지난해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 기초선거에 참여하려 창당 후 정당등록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또한 올해 1월 헌법소원을 냈다.
정당법상 정당은 수도에 중앙당을 두고, 특별시·광역시·도엔 각 1,000명 이상의 당원으로 구성된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이 아니면 명칭에 정당임을 표시하는 문자를 쓰지 못한다. 청구인들은 "정치적 표현과 정당의 설립·가입·활동의 자유, 평등권, 선거권, 공무담임권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합헌 의견을 낸 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형두 재판관은 "지역 연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당정치 풍토가 국내 정치현실에선 특히 문제시되고 있고, 지역정당을 허용할 경우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지역 간 이익 갈등이 커지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며 "정당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반해 유남석·문형배·정정미 재판관은 "거대 양당에 의해 정치가 이뤄지는 현실에서 전국정당조항은 지역·군소·신생정당이 정치영역에 진입할 수 없도록 높은 장벽을 세웠고, 각 지역 현안에 대한 정치적 의사를 적극 반영할 수 있는 정당 출현을 배제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차단할 위험이 있다"고 위헌 의견을 냈다.
김기영·이미선·재판관도 위헌 의견을 내며 "헌법 취지를 고려할 때 정당의 설립·조직·활동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나 침해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짚었다. 이어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 참여에 반드시 전국 규모 조직이 필요한 건 아닌 점 △지역정당 배제가 지방정치를 중앙정치에 종속시켜 지방정치 활성화를 막는 점 △다양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정당 출현을 막아 정당간 경쟁, 정치적 다양성, 정치과정의 개방성을 약화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위헌 이유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