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옥적 허용'? 막장 드라마, 매운맛이면 정말 다 괜찮을까

입력
2023.10.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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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중심 선 막장 드라마 SBS '7인의 탈출'
아동학대·교내 출산·고문…'드라마면 다 돼?'
"최소한의 개연성 있어야…시청률 장사만" 지적도


# 1. 연예인 지망생인 고등학생 한모네(이유비)는 갑자기 진통을 느끼더니 학교 미술실로 뛰어가 아이를 낳는다. 자신에게 흠이 될까 걱정하던 한모네는 "(친구인) 방다미(정라엘)가 양아버지 이휘소(민영기)의 아이를 낳았다"고 뒤집어씌운다. 거짓된 정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퍼지면서 방다미는신상털이와 집단 구타 등 괴롭힘을 당한다.

# 2. 방다미의 가정사는 복잡하다. 어릴 때 방다미를 버렸던 친엄마 금라희(황정음)는 딸을 앞세워 시아버지(방다미의 친할아버지) 방칠성(이덕화)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방다미를 뒤늦게 찾아온다. 하지만 자신의 몫을 챙기자마자 금라희는 고등학생인 방다미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는 등 학대행위를 저지른다.


시청자 민원 폭주…'순옥적 허용' 넘는 현실 왜곡·편견 부추기는 설정들

SBS 금토드라마 '7인의 탈출'이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이 드라마는 방다미의 실종에 연루된 7명의 악인들의 생존 투쟁과 이들을 응징하는 서사를 그린 피카레스크(악인이 주인공인 작품) 복수극이다. 6화까지 방영된 현재 시청률은 6~7%대로 비교적 선방하는 중이지만 금토 황금 시간대인 오후 10시에 방송되기엔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설정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반응도 나온다. 교내 출산, 청소년 학대뿐이 아니다. 지난달 29~30일 방송된 회차에선 등장인물들이 모두 마약에 취해 환영을 보고 집단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까지 전파를 탔다. 앞선 회차와 달리 5, 6화부터는 청소년 관람불가로 규제했지만 지나친 연출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7인의 탈출' 4화까지의 관련 민원도 57건에 달한다.

'7인의 탈출'의 김순옥 작가의 전작 역시 '아내의 유혹', '왔다! 장보리', '펜트하우스' 등 대부분 복수에 방점이 찍힌 자극적인 드라마에 가까웠다. 주인공이 복수를 벼를 수밖에 없도록 벼랑 끝에 몰렸다가 자비 없는 복수를 해 나가는 스토리가 대부분이었다. 등장인물이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 돌아오는('펜트하우스') 등 여러 설정들에도 현실성이 떨어져 '순옥적 허용'이라는 표현까지 유행한다.


자극성 소재로 전락한 청소년의 출산…의도적 시청률 장사 지적도

이런 설정과 스토리 전개가 단순히 허구적 세계관의 표현이 아니라 편견과 왜곡을 부추긴다는 점이 문제다. 예컨대 '7인의 탈출'에서는 미성년자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 인물의 '약점'으로 간주된다. 이를 다루는 연출 방식도 문제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을 하는 서울 YWCA의 조혜원 활동가는 "출산 전 하혈을 그대로 보여준다거나 출산을 하는 모네의 벌린 두 다리가 강조되는 연출은 불필요하게 자극적일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라면서 "단순한 자극성을 떠나 미성년자의 임신과 출산을 개인의 부적절한 행실과 책임으로 그린다는 점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허구의 세계를 그린 드라마 특성상 어디까지가 표현의 자유고, 허용이 가능한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막장이기만 한' 드라마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예컨대 복수극인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의 경우에도 고데기 고문 등 일부 장면이 자극적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학교폭력 피해자 동은(송혜교)이 복수를 꿈꾸게 된 이유와 실행 과정 등이 설득력 있게 전개되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장르적 속성상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설정이 나올 수는 있지만 최소한의 개연성은 있어야 하는데 '7인의 탈출'은 자극적인 상황을 열거만 하는 전개"라면서 "기본적 스토리텔링이 없어 의도적으로 (시청률) 장사를 하겠다는 것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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