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4명의 유아(생후 8개월~2세)가 펜타닐 중독 증세를 보이고, 이 중 한 살배기 아이는 숨지기까지 했던 미국 뉴욕 브롱크스의 한 어린이집. 경찰 수색 결과, 아이들의 낮잠용 매트 아래엔 펜타닐 1㎏이 숨겨져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문제의 어린이집에서 수백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아예 ‘마약 시장’마저 형성돼 있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4일(현지시간) 해당 지역에서 대낮부터 마약 거래는 물론, 투약도 이뤄지는 탓에 주사기나 피 묻은 일회용 알코올 솜이 길거리에 널려 있다며 그 실태를 보도했다. 그런데도 뉴욕 경찰은 이처럼 공공연한 마약 시장에 큰 관심이 없다. 사실상 방치에 가깝다. 왜일까.
뉴욕은 ‘비범죄화’로 마약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단속을 강화하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대신, 마약을 ‘합법적으로’ 투약하는 공식적 공간(약물과다복용 예방센터·OPC)을 만드는 식이다. 물론 명암이 존재하고, 딜레마도 여전하다. 마약에 대한 관용은 중독을 줄일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부채질할 것인가. 수십 년째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는 미국이 골머리를 앓는 질문이다.
지난해 뉴욕시의 마약 관련 사망자 수는 3,200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를 두고 “뉴욕시와 주정부가 1990년대 후반에 흔했던 길거리 마약에 대한 공격적 법 집행을 외면한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고 NYT는 전했다.
현재 미국에선 뉴욕을 중심으로 마약 문제를 처벌보다는 ‘치료’에 중점을 두고 풀어가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뉴욕은 2021년 미국 최초로 OPC를 열고 사용자들이 마약을 가져와 새 주사기로 투여할 수 있도록 해 줬다. 이에 앞서 주사기와 바늘, 마약 해독제 나르탄 등을 ‘마약 관련 도구’라며 소지 사실만으로도 체포하던 법을 고쳤고, 마약 사용자에겐 수감 대신 중독 치료를 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정책 변화는 1970, 80년대 ‘마약 무관용 대응’ 원칙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마약 단순 소지만으로도 체포한 탓에 너무 많은 사람이 교도소에 갇히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마약사범 수감률과 약물 오남용에 따른 사망률 사이엔 유의미한 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경찰의 마약 수사가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도 일었다. 뉴욕 브롱크스에서 기소된 마약사범의 94%는 흑인 또는 라틴계였다.
뉴욕의 마약 관련 체포 건수는 2018년 2만7,232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0년 1만4,156건으로 대폭 감소했다. 올해의 경우 9월까지 1만6,00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 늘었지만, 여전히 2018년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마약의 비범죄화 정책 효과로 볼 법하다.
그러나 뉴욕이 마약에 관용을 베풀기 시작한 시점부터 치안은 엉망이 됐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미국 할렘 지역에 대한 인식 제고 운동을 펼치는 시민단체의 창립자 숀 힐은 “거리에서 대놓고 마약을 하는 이들을 신고하더라도 경찰에 체포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지난 4, 5년간 치안이 극적으로 변화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브롱크스에서 네 자녀를 키우는 크리스 카스테야노스도 “아이들이 등굣길에 아파트 계단에서 마약상을 지나쳐야 한다”며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에 오후 6시 이후엔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뉴욕시 마약 담당 검사인 브리짓 브레넌도 마약 범죄에 관대한 법 적용을 비판했다. 그는 NYT에 “과다복용과 경범죄에 대한 엄한 형벌을 줄이려는 의도였지만, 마약상을 대담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사들이 마약상을 서너 번 기소해도 보석으로 풀려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