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클래스' 성악가들의 고국 무대… 3색 이탈리아 오페라

입력
2023.09.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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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나비부인'· '투란도트'·'노르마' 다음 달 개막
테너 이용훈, 소프라노 여지원·임세경 등 주역 맡아 기대감 높여


이번 가을 한국 오페라 무대는 출연 성악가들의 면면만 보면 세계 정상급이다.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은 한국인 성악가들이 잇따라 고국 무대에 서기 때문이다. 우선 10월 12~15일 성남아트센터 제작 오페라 푸치니 '나비부인'의 여주인공 초초상 역으로는 이 역할로 200회 가까이 유럽 무대에 선 소프라노 임세경(48)이 출연한다. 서울시오페라단과 예술의전당은 10월 26~29일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와 벨리니의 '노르마'를 각각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린다. '투란도트'는 미국과 유럽의 세계 정상급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테너 이용훈(50)의 국내 데뷔작으로, '노르마'는 '비토리아 여'라는 이름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소프라노 여지원(43)의 출연으로 일찌감치 화제가 됐다.

2576년으로 간 푸치니의 ‘나비부인’

1904년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초연 후 세계 오페라 극장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한 이탈리아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나비부인'은 최근에는 아시아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담고 있다 하여 자주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2막의 '어떤 갠 날' 등의 아리아는 푸치니의 서정성이 돋보이는 명곡으로 꼽힌다. 하지만 가난 때문에 15세에 게이샤가 된 나비부인 초초상과 미 해군 장교 핑커톤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이야기에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성남아트센터가 성남시 승격 50주년을 기념해 제작하는 '나비부인'은 원작의 배경인 19세기 말 일본 나가사키를 2576년의 우주로 옮겼다. 엠포리오 행성의 사령관 핑커콘과 파필리오 행성의 공주 초초상이 동등한 위치의 협상자로 만나는 설정이다. 정구호 연출가는 "제국주의적 시대상과 근대적 남녀관계의 관점에서 벗어나고자 했다"고 파격적 설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초초상 역을 맡은 소프라노 임세경은 "현대적 연출을 비롯해 다양한 버전의 '나비부인’ 무대에 섰지만 이렇게 혁신적인 프로덕션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2004년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로 이탈리아에서 데뷔한 임세경은 2015년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축제 '아이다'의 주역으로 발탁되는 등 '첫 한국인'의 기록을 여럿 갖고 있다. 소프라노 박재은이 임세경과 초초상을 나눠 맡고, 테너 이범주와 허영훈이 핑커톤 역을 맡았다.

세계가 인정한 테너의 첫 고국 무대 ‘투란도트’

서울시오페라단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푸치니의 '투란도트'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세계 정상급 무대에 서 온 테너 이용훈의 국내 무대 데뷔로 관심을 끈다. '리리코 스핀토(서정적 음색과 힘 있는 목소리를 함께 지닌 테너를 뜻하는 찬사)' 테너로 꼽히는 이용훈은 칼라프 역을 맡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아리아 '네순 도르마(아무도 잠들지 말라)' 등을 들려주게 된다.

이용훈은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 오스트리아 빈 국립 오페라와 독일 베를린 도이체 오퍼 등에서 주역 테너로 활약해 왔다. 2021∼2022시즌 호주 오페라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투란도트'의 칼라프로 출연했고,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의 '투란도트'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이번 '투란도트'는 연극, 창극, 마당놀이,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해 온 연출가 손진책의 오페라 연출 데뷔로도 관심을 모은다. 테너 신상극, 박지응이 이용훈과 번갈아 칼라프를 연기하고 소프라노 이윤정과 김라희가 투란도트 역으로, 소프라노 서선영, 박소영이 류 역으로 출연한다.

로열오페라하우스의 무대를 그대로, '노르마'

이탈리아 작곡가 빈첸초 벨리니(1801~1835)의 오페라 '노르마'는 고난도의 기교로 아름답게(bel) 노래하는(canto) 벨칸토 오페라의 정수로 꼽힌다. 34세에 요절한 벨리니의 대표작인 '노르마'는 켈트족 여사제 노르마와 적국 로마 총독 폴리오네의 금지된 사랑과 배신, 자기희생을 그린다. 소프라노의 고난도 가창력이 요구돼 자주 상연되지 않다가 마리아 칼라스(1923~1977)가 등장하며 해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칼라스가 부른 버전으로 유명한 노르마의 아리아 '정결한 여신이여'를 이번 공연에서는 소프라노 여지원이 부른다. 여지원은 거장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발굴한 소프라노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무티의 발탁으로 2015년 한국 소프라노 최초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오페라 '에르나니' 주역으로 무대에 섰고, '노르마'의 노르마를 비롯해 다양한 역할로 유럽 주요 극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국내 무대에서 노르마를 연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영국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가 2016년 시즌 개막 작품으로 초연한 알렉스 오예 연출 프로덕션 그대로 예술의전장 오페라극장에 재현할 예정이다. 노르마는 여지원과 이탈리아 소프라노 데시레 랑카토레가 나눠 맡고, 테너 마시모 조르다노와 메조 소프라노 테레사 이에르볼리노, 베이스 박종민 등이 출연한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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