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의 독도' 격렬비열도… 추석에도 최전선 지키는 사람들

입력
2023.09.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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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비열도 등대지기, 김대환 소장
"길잡이이자 해양 영토 수호 첨병"

김대환(51)씨의 출근길은 여느 직장인과 다르다. 매달 1일 동틀 무렵 충남 서산시 집을 나서 오전 7시까지 태안군 신진항으로 향한다. 다시 고깃배를 두 시간 타고 55㎞를 가야 직장에 도착한다. 동해 독도처럼 서해 끝에 있는 무인도 격렬비열도다.

그의 직함은 격렬비열도 항로표지관리소장. 114년 전인 1909년부터 밝히기 시작한 격렬비열도의 등대를 관리하는 항로표지관리원, 즉 등대지기다. 김 소장을 포함해 3명의 항로표지관리원이 번갈아 2인 1조로 20일씩 근무하며 등대를 돌본다. 우리 영토 최서단에서 추석 연휴에도 쉼 없이 우리 어선의 눈이 돼 주는 등대 밑에 이들이 있다.

오전 6시 30분 김 소장의 하루(주간조 기준)가 시작한다. 전날 오후 7시부터 12시간 일한 야간 근무자와 교대하면서 가장 신경 써 확인하는 건 에너지원인 축전지다. 밤새 등대에 쏟고 남은 전력을 파악하는 일이다. 낮 동안엔 태양광 발전으로 축전지 전력을 최대한 채우도록 관리해야 한다. 그렇기에 날씨 예보도 아침부터 시시각각 챙겨 본다. 날씨가 흐려 햇빛이 약하면 태양광 대신 발전기를 돌려야 해서다.

격렬비열도 등대의 빛은 약 40㎞ 떨어진 곳에서부터 감지할 수 있다. 인천, 평택, 대산항을 입출항하는 컨테이너 선박은 물론 수많은 서해 어선이 이 빛에 의지한다. 김 소장은 "등대는 칠흑 같은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박엔 항행 안전시설이고, 조업을 마친 어선엔 집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든든한 길잡이"라고 설명했다.

등대가 뿜어내는 건 빛만 있지 않다. 소리, 전파도 퍼져 나간다. 안개가 자욱해 등대 빛을 인지하기 어려울 땐 '전기 혼'(horn)을 사용한다. 5초간 나팔 소리를 내고 25초간 멈추길 반복하는 방식으로 항해사에게 격렬비열도의 위치를 알린다. 24시간 내내 모스 부호 형태로 발사하는 전파도 선박, 어선 레이더 화면에 격렬비열도를 뜨게 한다. 이렇게 항로표지관리원이 관리하는 유인 등대는 전국 31개다.

격렬비열도는 유인 등대가 서 있는 섬 중에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독도와 마찬가지로 영토 주권 수호를 위한 최전선이다. 3개의 섬으로 이뤄진 격렬비열도 중 가장 서쪽에 있는 서격렬비열도 기준으로 12해리(약 22㎞)까지 우리 바다다. 이곳에선 우리 어선이 자유롭게 조업할 수 있다. 거꾸로 중국 어선이 침범하면 '불법'이다.

2014년 중국인이 양식장 사업 명목으로 서격렬비열도를 사려는 시도도 있었다. 자칫 영토 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한국 정부는 당시 사건을 계기로 1994년 이후 따로 관리하지 않았던 격렬비열도에 2015년부터 항로표지관리원을 재배치했다. 김 소장은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 감시 등 해양 영토 수호의 첨병 역할 수행을 할 수 있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선착장이 없는 격렬비열도를 국가관리연안항으로 지정하고, 부두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기상 악화 시 해양경찰선, 어선이 위험을 무릅쓰고 육지로 돌아가는 대신 격렬비열도에 잠시 피할 수 있다. 독도처럼 관광객을 싣고 여객선이 찾는 것도 가능해진다.

추석 당일인 29일은 김 소장 대신 신정원, 강동우 항로표지관리원이 격렬비열도를 밝히고 있다. 10일 휴식 기간 중인 김 소장은 이틀 후인 다음 달 1일 격렬비열도로 복귀한다. '격렬비열도 지킴이들'을 대표해 인터뷰에 응한 김 소장은 "20일의 근무 기간엔 신선한 채소, 과일이 부족한데 동료들이 명절 음식을 잘 챙겨 먹지 못할 것 같다"며 "교대 뒤 다른 직원도 가족 곁에서 남은 추석을 편안하게 보냈으면 한다"고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세종=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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