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회계장부 공개(회계공시)를 강제하는 시행령이 19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달 5일 입법예고 후 14일 만의 속전속결이다. 상시 고용 1,000인 이상 기업의 노동조합과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상급단체는 회계장부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조합원의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이 박탈된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노조의 회계 결산 공시 시기와 방법 등을 규정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지금까지는 노조가 조합비를 어떻게 쓰는지 공개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회계 공시를 해야 조합원들이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기부금’에 속하는 노조 조합비는 15%까지 세액공제가 이뤄진다.
정부는 노조가 세액공제 혜택을 누리면서 회계 공시를 거부하는 것은 켕기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개정된 노동조합법 시행령의 핵심은 회계 투명성 제고를 통해 노조의 민주성과 자주성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조합원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 노조가 스스로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데 적극 동참하기를 바란다"라고 촉구했다.
다만 정부가 국회 입법이 아닌 ‘시행령 개정’이란 우회 방식을 선택하면서 '꼼수 입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행정부 권한인 시행령 개정은 국회의 입법 논의를 피할 수 있어 속전속결로 변경이 가능하지만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당사자 설득이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장 정부가 바뀌면 시행령이 다시 바뀔 것이란 시각도 있다. 세액공제 혜택이라는 정부 지원 때문에 조합원이 내는 전체 조합비가 정부 감시를 받아야 하는지를 두고도 법적 해석이 분분하다.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입장문을 통해 “노조법 개정은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라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본질은 노조 통제에 있다”며 “노조법 개정을 빌미로 확산될 부당한 행정 개입에 단호히 맞설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가 친기업 행보를 걸어온 것을 감안하면 “노조 탈퇴를 부추겨 노조 힘빼기에 나서려는 의도”라는 게 노동계 입장이다.
양대노총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세액공제 박탈이라는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회계장부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양대 노총이 공개를 거부하면 최대 280만 명이 불이익 영향권에 들어간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지원재활법 시행령' 개정안도 의결, 장애인 고용의무가 있는 기업에 대한 장애인 채용계획과 실시 현황 신고 의무를 연 2회(1, 7월)에서 연 1회(1월)로 축소했다. 기업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지만, 상대적으로 채용 여력이 있는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률(2.37%)마저 법적 고용률(3.1%)을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행령 개정으로 고용 약자인 장애인의 구직이 더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