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17일 내년 총선에 앞서 당 지도부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대통령실 참모들의 차출을 요청했다는 '용산 차출설'을 두고 이같이 지적했다. 당 지도부가 "공천 명단을 주고받은 적 없다"며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의원들의 잠재된 불안이 확산될 경우 공천 갈등의 기폭제가 될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당내에선 "벌써부터 공천 갈등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대통령실과 지도부 간 '공천 명단' 존재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김기현 대표는 지난 15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잘 모르는 사실"이라고 선을 그었고, 이철규 사무총장도 14일 소속 의원들에게 "당과 대통령실 사이에 총선 관련 명단을 주고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용산 차출설은 총선에 앞서 원활한 조직 정비와 인재 영입 차원의 의견 교환이었다는 게 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통령실에서 활약 중인 능력과 인지도를 갖춘 인재를 적기에 당에 합류시켜 총선 승리를 위한 국민의힘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얘기다.
당내 불안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 대통령실과 여당 간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내년 총선 과정에서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탓이다. 김 대표 역시 지난 전당대회에서 윤심을 바탕으로 당대표로 당선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총선의 최대 격전지인 수도권뿐 아니라 보수 텃밭으로 불리는 영남에서 윤심을 등에 업은 대통령실 참모진의 출마에 대한 현역 의원과 당협위원장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 초선의원은 지도부의 해명에 대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있겠느냐"며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소리가 아니라 당을 장악해 공천에서 이기겠다는 소리와 뭐가 다르냐"고 직격했다. 다른 중진의원은 "재선밖에 안 되는 사무총장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부는 공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지도부 눈치보기'에 자괴감을 느낀다는 반응도 나온다. PK(부산·경남) 지역의 한 의원은 "당 지도부가 김만배 허위 인터뷰 의혹 관련 '대국민 보고 기간'에 개별 여론전을 지시해 피켓을 들고 지역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며 "의혹 실체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공천에 불이익을 받을까 봐) 나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했다.
이 같은 경고음은 용산 차출설 이전부터 울리고 있었다. 당의 중진의원들은 지난 10일 김 대표와의 만찬에서 '대통령실 의중이 공천에 반영되면 안 된다'는 취지의 우려를 전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객관적인 데이터 없이 '대통령과 가깝다', '당 실력자와 친하다'는 이유로 내리꽂기 공천을 하면 보수 표 분열로 패배하고 말 것"이라며 "김 대표가 공정한 공천 기준을 조속히 발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전했다. 총선 공천에 대한 공정성 확보를 위해 김 대표가 주도권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김 대표는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당대표실 관계자는 "지는 선거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김 대표의 의지는 확고하다"며 "(당내 동요가 이어질 경우) 대표 차원에서 강구할 수 있는 방안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