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집단 학살을 위해 만들어진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뒤 독일 나치의 만행을 적극 증언해 온 헝가리 작가 에바 파히디가 별세했다. 향년 97세.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아우슈비츠 생존자 모임인 국제아우슈비츠위원회(IAC)는 파히디가 지난 11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1925년 헝가리 데브레첸에서 태어난 유대인 파히디는 1944년 가족과 함께 폴란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당시 그는 만 18세였다. 훗날 회고록에서 파히디는 "내 청춘은 1944년 7월 1일 비르케나우의 경사로에서 갑작스럽게 끝났다"고 썼다.
'죽음의 천사'로 악명을 떨친 주임의무관 요제프 멩겔레의 손짓 하나에 수용소에 갇힌 이들의 생사가 갈렸다. 상대적으로 젊고 건강했던 파히디는 강제 노역에 동원됐지만, 다른 가족은 모두 가스실로 보내졌다. 그는 이듬해 독일 중부 도시 알렌도르프에 있는 군수 공장에서 종전을 맞으며 자유를 되찾았다.
파히디는 2003년 관광명소가 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의 모습에 실망한 뒤, 비극의 역사를 증언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2015년 전직 나치 친위대원(SS) 오스카어 그뢰닝의 전범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게 대표적이다. 그뢰닝은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 등을 통해 복역을 회피했고, 결국 단 하루도 수감 생활을 하지 않은 채 2018년 숨졌다.
파히디는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춤으로 빚어낸 100분짜리 공연을 2015~2017년 유럽 전역에서 50회 이상 선보였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인 우경화 경향과 반유대주의 급부상을 걱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토프 호이브너 IAC 부회장은 "파히디는 생의 마지막 한 달 동안 극우주의와 인종주의 정치인들의 반유대 혐오와 증오 선동을 슬퍼했다"고 NYT에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