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중국의 '전기자동차 굴기(崛起·우뚝 섬)'를 본격적으로 견제하고 나섰다. 정부 보조금에 힘입은 가격 경쟁력으로 해외 시장에서 질주 중인 중국산 전기차 업체를 상대로 반(反)보조금 조사에 착수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처럼 '고율 관세 부과'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전기차 이슈가 EU·중국 간 '무역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1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EU가 중국산 전기차 관세율을 미국(27.5%) 수준으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유럽에 수입되는 중국 자동차에 부과되는 관세율은 10%다. 전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연례 정책연설에서 "중국산 전기차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반보조금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는데, 이 조사 결과에 따라 관세가 상향될 수 있다는 게 블룸버그의 설명이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연설에서 "글로벌 시장은 값싼 전기차로 넘치는데, 막대한 국가 보조금 탓에 가격이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되고 있다"며 중국을 정면 겨냥했다. 그는 이 외에도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기후위기 대응 △유럽 풍력 발전 법안 추진 등 다양한 사안을 언급했지만, 연설의 핵심은 '자동차 중심 유럽 산업 보호'였다.
자동차산업은 유럽 전체 고용의 약 7%(약 1,300만 명)를 차지하는 '경제 엔진'이다. 특히 전기차 중심 체제로의 전환을 추진 중인 EU 입장에서 세계 최대 전기차 수출국인 중국은 눈엣가시다. 중국 정부의 자국 전기차 업체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은 유럽산 또는 미국산 전기차보다 최대 30%가량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시장점유율을 빠른 속도로 높이고 있다. 중국승용차협회(CPCA)와 미 CNN방송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상반기에만 유럽 9개국에 전기차 약 35만 대를 수출했다. 지난해 전체 수출량보다도 많은 규모다. 지난해 8% 정도였던 EU 내 중국산 전기차 점유율도 2025년까지 15%로 상승할 전망이다.
중국은 곧바로 반발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 연설과 관련,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14일 "고도의 우려와 강한 불만을 표한다"며 "EU를 포함한 세계 자동차 산업망·공급망을 교란·왜곡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적나라한 무역 보호주의 행위"라며 대화·협상으로 해결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유럽과 중국 간 무역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유럽은 중국과 관계를 유지하되,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는 '디리스킹(위험 제거)'을 추진해 왔지만, 전기차를 둘러싼 대중 무역 전쟁은 유럽에 큰 비용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중국이 보복 조치에 나서면 유럽으로선 '잃을 게 더 많은 싸움'을 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글로벌 시장에 원자재와 각종 부품을 대는 주요 공급망인 데다, 독일 등 완성차 업체들의 거대 소비 시장이기도 하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도 내심 EU 조치를 우려하고 있다. 영국 컨설팅업체 플린트 글로벌의 무역 전문가 샘 로우는 "(EU의 조사는)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라며 "중국의 보복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