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니 죽음 1년' 이란, 반정부 물결 재점화하나... '애도 시위'에 긴장 최고조

입력
2023.09.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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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16일 아미니 사망 1주기 추모식
추모 물결, 반정부 시위로 격화 불 보듯
당국, 바짝 긴장... 시위 차단 단속 '고삐'

이란에 반정부 시위 전운이 감돌고 있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 마흐사 아미니(당시 22세)의 사망 1주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1년 전 그의 죽음 당시, 시민들의 분노는 1979년 이란 이슬람 정권 수립 이후 최장 기간, 최대 규모로 타올랐다. 당국은 아미니 추모 움직임이 민주화를 부르짖는 함성으로 이어질까 바짝 긴장하고 있다.

"시위 막아라"… 정부, 유가족 협박·체포까지

아미니의 유가족은 그가 의문사한 지 꼭 1년이 되는 16일(현지시간), 이란 서부 쿠르디스탄주(州) 사케즈에서 추모식을 거행한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예고했다. 아미니의 무덤이 있는 해당 지역에서 '전통적·종교적' 방식으로 그의 '순교'를 기리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전방위 압력을 가하고 있다. 1년 전 무력으로 진압했던 시위 물결이 추모식을 계기로 재점화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13일 쿠르디스탄인권네트워크(KHRN) 등에 따르면, 이란 정보 당국은 지난 11일에도 아미니의 부친 암자드 아미니를 불러 1시간 동안 조사했다. 최근 2주간 네 차례나 그를 소환했다. 아미니의 삼촌 사파 아엘리는 지난 5일 이유 없이 체포돼 구금돼 있다. 한 친척은 "정부가 추모식을 열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다"며 "가족이 인터뷰나 연설 등을 하면 아미니의 다른 형제를 체포하겠다는 위협도 반복했다"고 자유유럽방송(RFE/RL)에 말했다.

이란 정부는 시위 재개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단속의 고삐를 죄고 있다. 아미니의 묘지 주변엔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경계를 강화했다. 이달 초부터 여성 운동가 수십 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수도 테헤란 거리에는 검문소 등에 더 많은 경찰관이 배치됐고, 인터넷 연결이 끊기는 일이 빈번해졌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대학가도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다. 최근 몇 주간 단속으로 테헤란의 대학 캠퍼스 내에서 시위를 했던 학생 수백 명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됐고, 최소 110명의 교수·강사가 해고나 정직 징계를 받았다고 통신은 전했다.


민심 자극 역효과?

정부 의도와는 반대로, 억눌려 있던 민심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강제 히잡 착용' 반대를 넘어 자유와 평등을 짓밟은 신정 독재 정권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누적된 탓이다. 대학생 시마(21)는 "정권은 시위를 막고자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반대 의사를 표출할 것"이라고 AP에 말했다. 메흐디 베하바디 이란학생여론조사국(ISPA) 대표는 "이란 국민 상당수가 이슬람공화국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고, 이는 이미 '위험한' 수준"이라며 "대규모 시위 때마다 표면적으로 가라앉을 뿐, 분노가 쌓여 다음번엔 수위가 더 높아진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지난해 뜨거웠던 시위가 소강 국면에 들어선 뒤, 정부는 다시 히잡 단속 강화에 나섰다. 올해 4월 공공장소에 감시 카메라를 도입했고, 7월엔 복장을 단속하는 도덕경찰의 활동도 재개했다. 그럼에도 수천 명의 이란 여성은 매일 히잡을 쓰지 않거나 느슨하게 쓰는 등 저항하고 있다. 최근 테헤란을 다녀온 한 방문객은 "모두가 최고지도자(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미국 시사잡지 타임에 전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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