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장학사업에 큰 족적을 남긴 관정이종환교육재단(관정재단) 설립자 이종환 전 삼영화학그룹 회장이 1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9세.
이 전 회장은 1924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마산고를 졸업한 뒤 1944년 일본 메이지대 경상학과를 수료했다. 이후 학병으로 끌려가 옛 소련과 만주 국경, 오키나와 등 사선을 넘나들다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 경제인의 길을 걸었다. 1958년 삼영화학공업을 창업해 현재 삼영중공업 등 10여 개 회사를 거느린 삼영그룹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지난달까지도 직접 재단을 챙기고 산하 기업들의 생산 현장을 지휘할 정도로 열정이 넘쳤다.
사업에 매진하던 이 전 회장은 2000년 6월 돌연 관정재단을 설립했다. 한국의 첫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는, 작지만 커다란 의지가 담긴 결단이었다. 그는 자연과학과 이공계 경쟁력이 국가 발전에 직결된다고 보고 장학사업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 전 회장이 20년간 기부한 돈은 1조7,000억 원이 넘었다. ‘기부왕’이란 별칭도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관정재단은 매년 국내외 장학생 1,000명에게 150억 원의 장학금을 줬다. 1만2,000여 명이 혜택을 받았고, 박사도 750명이나 배출했다. 2012년엔 서울대에 600억 원을 쾌척해 2만5,834㎡ 규모의 관정도서관을 헌정하기도 했다.
“돈을 버는 건 천사처럼 할 수 없어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하련다”는 평소 행동철학이 그를 장학사업으로 이끈 원동력이었다. 2008년 출간한 자서전 ‘정도’에는 이 전 회장의 마음가짐이 잘 표현돼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나를 바보라 할지 모른다. 그것은 베풂의 기쁨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인생은 어차피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빈손으로 왔다가 손을 채운 다음 갈 때는 빈손으로 가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임종 직전 남긴 말도 “관정 장학생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걸 보지 못하고 가게 돼 아쉽다”는 것이었다. 이 전 회장은 “정도대로 살라. 정도가 결국 이긴다. 서로 용서할 줄 알아라”는 유언을 끝으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전 회장은 사회 기여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국민훈장무궁화장을 수훈했고, 2021년 4·19문화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장남 이석준 삼영 대표 등 2남 4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5일 오전 8시30분, 장지는 경기 의왕시 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