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인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78)이 건강 악화에도 군부 방해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인도주의 차원에서 의료 지원이 필요하다고 그의 가족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군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수치 고문의 아들 킴 아리스(45)는 영국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잦은 구토와 심각한 현기증을 앓고 있는 데다, 치주염으로 잇몸이 붓고 이가 상해 음식을 잘 못 드신다.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고 밝혔다. 아리스는 현재 영국에 체류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진료를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리스는 “건강 상태가 연일 악화하면서 교도소 당국조차 교정시설이 아닌 외부 의료진으로부터 응급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군부가 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손쓸 수조차 없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의 도움도 기대하기 힘들다. 아리스는 영국 외무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현재 미얀마 군부와 협력 관계를 맺지 않고 있어,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실제 양국은 사실상 외교 관계를 끊은 상태다. 지난해 미얀마 군부는 자국 민주 인사들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주미얀마 영국 대사를 추방했다. 전직 영국 대사 부부에겐 징역형을 선고했다. 영국 정부도 이에 맞서 미얀마 기업에 대한 경제 제재를 지속하고, 군정을 향한 외교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아리스는 “그간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 감옥에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것을 생각하면 이는 심각한 우려 사항”이라며 “아픈 수감자를 치료하지 못하게 하는 건 냉담하고 잔혹한 일”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7월 미얀마에서 수치 고문을 직접 만나고 온 돈 쁘라맛위나이 태국 부총리 겸 외교장관이 “수치 고문의 건강 상태는 양호하다”고 밝힌 것과는 대조적인 주장이다.
미얀마 군부는 수치 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2020년 11월 총선에서 압승하자 이듬해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당시 수치 여사는 곧바로 군부에 체포됐고, 부패와 선거 조작 등 혐의로 징역 33년형을 선고받은 뒤 수도 네피도의 교도소 독방에 수감됐다. 군정은 지난달 수치 고문의 형량을 27년으로 6년 단축했지만, 여든을 바라보는 고령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종신형이나 마찬가지라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리스는 수치 고문이 작고한 남편 마이클 아리스와의 사이에서 얻은 2남 중 둘째다. 영국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 국적을 얻었다. 14세였던 1991년 가택연금 중인 어머니를 대신해 노벨평화상을 대리수상하기도 했다.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온 그는 지난 6월 영국 BBC방송과 첫 인터뷰를 하면서 “언론 앞에 나서거나 관여하고 싶지 않았고 어머니도 그걸 원하지 않았으나, 어머니가 감옥에서 고통스럽게 계시는 걸 내버려 둘 수 없다”며 국제사회에 적극적인 도움을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