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심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주도하고 있는 미 상무부의 2인자가 다음 주 한국을 방문한다.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침략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 미국의 글로벌 패권 경쟁 상대국인 중국 등을 상대로 실효적 수출 통제를 하기 위한 한미 간 협력 방안이 핵심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특히 북한의 대(對)러시아 무기 지원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북러 정상회담 직후, 미 상무부 고위 관리가 방한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되고 있다.
돈 그레이브스 미 상무부 부장관은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가 주최한 한미통상협력 포럼의 기조연설을 통해 자신이 내주 한국과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수출 통제를 위한 한미 공조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레이브스가 꼽은 한미 양국의 수출 통제 관련 최우선 현안은 러시아의 전쟁 물자 확보 저지다. 그는 “무엇보다 우리는 러시아가 수출 통제를 우회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불법적 전쟁에 사용할 기술과 물품을 마련하는 것을 계속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 정상회담에서 무기 및 군사용 물품의 대러 이전에 합의할 경우, 한미가 어떻게 대응할지를 비중 있게 의논할 방침임을 시사한 것이다.
더불어 대중국 수출 통제 방안도 양국 간 협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레이브스 부장관은 “우리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거나 해치고,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들이 자국 국민의 자유를 부정하며 이웃을 위협하는 데 쓸 무기와 기술을 얻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을 염두에 둔 언급으로 해석된다.
대중 수출 통제는 한국의 이해관계와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 정부는 지난해 10월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장비의 중국 수출을 사실상 전면 제한하고, 중국 내에 반도체 공장이 있는 외국 기업의 경우 개별 심사를 거쳐 판단하기로 했다. 다만 한국 기업은 1년간 예외로 인정했다. 중국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공장이 계속 가동되는 게 중국의 ‘반도체 굴기(屈起·일어섬)’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고려에서였다.
그러나 지난달 말 중국 화웨이가 7나노미터(㎚·10억 분의 1m)급 첨단 반도체를 탑재한 5세대(G)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를 출시하면서 기류가 변할 가능성이 생겼다. 미국의 대중 장비 수출 통제 목적이 중국의 7나노 기술 입수 차단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의 대응이 강경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수출 통제의 장기 유예를 기대했던 한국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
그레이브스 부장관은 말을 아꼈다. 기조연설이 끝난 뒤 기자들과 따로 만난 그는 ‘다음 달 만료되는 한국 기업 대상 수출 통제 유예 조치의 연장에 대한 논의가 서울에서 이뤄지느냐’는 질문에 “서울에서 대화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다음 주에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최근 화웨이의 7나노 반도체 내장 스마트폰 출시와 관련해 수출 통제가 강화돼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며 즉답을 내놓진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수출 통제를 효과적으로 적용하며, 한국·일본 등 파트너와 협력해 우리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추고, 다른 나라가 우리의 민주적 가치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날 연설에서 그레이브스 부장관은 지난달 말 중국 방문 때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이 “미국의 국가 안보와 노동자 및 기업 보호를 위해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사실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비시장적 무역 및 투자 관행에 맞서 미국과 동맹·파트너 국가들이 보유한 기술 경쟁력을 유지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는 미국은 물론, 동맹·파트너에 이득이 될 안전한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레이브스 부장관은 방한 기간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등과 만나 중국의 갈륨·게르마늄 등 희소금속의 수출 통제에 대한 대응 방안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자신의 한일 방문에 미 첨단 산업 및 서비스 업계 기업인들도 동행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