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반(反)이민 정서에 기댄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끝내 내키지 않았던 손을 잡고 재도약할 것인가. 16년간 재임하며 '독일 최장수 총리'로 역사에 기록된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2005~2021년 재임)가 이끌었던 독일의 중도보수 정당인 기독민주당(CDU)이 기로에 섰다. 현재 제1야당인 기민당이 텃밭이었던 작센주(州)에서마저 AfD의 지지율에 밀리는 굴욕을 당한 탓이다. 그동안 극우와는 거리를 뒀던 기민당 내 기류 변화가 점쳐지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독일 여론조사기관 인사(INSA)가 7일 발표한 정당 지지율 조사 결과, 옛 동독 지역인 작센주에서 AfD가 35% 지지율을 기록해 기민당(29%)을 6%포인트 앞섰다. 올해 6월과 7월, 창당 10년 만에 처음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을 배출한 AfD가 급기야 기민당의 지지율마저 뛰어넘으며 기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AfD의 급부상은 주류 정치권에도 파급력을 미쳤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당 대표가 지난 7월 "중앙 정치가 아닌 지역에선 AfD와 협력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해 논란을 부른 게 대표적이다. 올라프 숄츠 현 총리가 이끄는 중도 좌파 성향 사회민주당(SPD), 녹색당, 자유민주당(FDP) 간 '신호등 연정'은 물론, 기민당도 과거 연정 구성 땐 "AfD와는 절대 손잡지 않겠다"는 원칙을 밝혔는데 이제는 상황이 좀 달라진 셈이다.
CNN은 오는 10월 주의회 선거를 앞두고 기민당이 딜레마에 직면했다고 짚었다. 기민당 탈당 후 AfD에 몸담은 외르그 퀴네 작센주 라이프치히 시의원은 "권력에 대한 열망을 가져야 하는 기민당이 이들 주에서 AfD와 한 테이블에 앉기를 강력히 권고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독일 공영 ARD방송 조사에서 독일인 대다수(64%)는 여전히 'AfD와 협력하지 않는 기민당 결정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다만 옛 서독과 동독 지역 간 온도 차가 있긴 했다. 과거 서독 지역에선 68%가 해당 결정을 지지한 반면, 구동독 지역에선 47%에 그쳤다. 독일 통일 이후 '2등 시민'으로 사회경제적 차별에 내몰렸던 옛 동독 지역에서 우경화가 더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AfD가 세를 확장한 계기는 2015년 난민 위기였다. 당시 난민과 이민자 수용에 적극 나섰던 메르켈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을 파고든 게 주효했다. 기민당에서 AfD로 당적을 바꿨다는 익명의 한 당원은 "기민당은 주류 사회를 위한 보수적 정책을 펼치지 않는다"며 "왼쪽으로 치우쳐 많은 사람이 더 이상 자신들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최근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비용 상승과 인플레이션에 따른 사회적 불만이 AfD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물론 여전히 극우에 대한 경계심도 기민당 내에 존재한다. 이 당 소속인 미하엘 크레치머 작센 주지사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약해질 때 민심은 포퓰리즘 정당에 기울곤 했다"며 "극우의 부상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정부가 불법 이민 등 중요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