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선생님이 써주신 어린 시절 나의 '캐해'(캐릭터 해석) 요약본을 읽는 것 같아요.”
최근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생기부)를 확인한 대학생 A씨의 반응이다. A씨는 "당시엔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 제 성격이랑 너무 비슷한 것 같다"고 신기해했다. A씨뿐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학창시절 생기부를 확인한 후기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성격유형검사(MBTI)보다 더 정확하게 나를 알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생기부는 초·중·고등학교 학적, 수상 내역 등 학교 생활 전반에 대한 내용이 기록된 문서다. 특히 담임 교사가 적는 종합 의견에는 "주변 돌아가는 상황과 사람에게 관심을 가짐" "글짓기에 두각을 보임" 등 학생의 생활 태도나 성격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2003년 이후 졸업생이라면 교육행정정보시스템(나이스)이나 정부24 홈페이지에서 본인 인증을 거쳐 발급받을 수 있다. 과거에는 학교 행정실에서만 발급이 가능했다. 해당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서 지난 5일에는 정부24 생기부 발급 서비스가 일시 마비되기도 했다.
특히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를 중심으로 '생기부 인증' 유행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어릴 땐 담임 선생님이 이런 내용을 왜 적었나 싶었는데 지금 보니 내 핵심적인 특성이다" "지금의 내 취미와 성격이 떡잎부터 보이다니 신기하다" "초등학교 생기부를 보다 회사에서 눈물이 났다" "어릴 때 나는 자신감도 있고, 꿈도 많았던 것 같다" 등의 글이 넘쳐난다.
생기부 인증 외 자신의 특성을 세세하게 알려주는 다양한 서비스도 Z세대의 관심을 끌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개인의 성격 유형을 16가지로 나누는 MBTI가 있다. MBTI는 취업시장 등에서 자기소개 필수 항목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개인의 외모나 신체를 분석해주는 검사도 인기다.
최근에는 개인의 유전자·미생물 검사 키트 붐까지 일고 있다. 한 자산관리플랫폼에서는 배송키트에 침을 담아 반송하면 유전 특성과 체내 미생물을 분석해주는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현재 100만 명 이상이 서비스를 찾았고, 유전자 검사를 받은 이의 91.8%가 2030 연령대로 Z세대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6월부터 서비스를 제공한 유전자 검사 플랫폼 '젠톡'은 두 달 만에 누적 방문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탈모, 비만, 피부 노화, 불면증, 카페인 대사 등의 여부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
최근 유전자 검사를 받은 직장인 전모(25)씨는 "검사에서 포만감 조절 유전자가 낮고, 발목 부상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 운동과 식단에 적용하고 있다"며 "나의 타고난 유전 특성을 알면 건강 관리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스스로에 대한 탐구 정신은 인간의 근본 욕구지만 Z세대의 '셀프 분석' 열망이 유독 뜨겁다. 이유가 뭘까.
사회의 급속한 발전이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최지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기성사회는 신분, 학력, 혈연, 지연 등을 근거로 개인 특성을 결정짓고, 변동 가능성도 기대하기 어려웠다”며 “반면 Z세대가 살아가는 지금은 '빅블러(Big blur·사회 환경이 급격히 변화해 업무 권역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 시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회의 기준을 벗어나 정체성 변동의 기회가 많아진 세대지만 그만큼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탐구해야 한다는 책임도 안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Z세대가 자기 정체성을 확립할 기회를 적절히 갖지 못한 '무한 경쟁 사회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보다 경쟁이 심화되는 와중에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문은 커지는 게 이 세대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셀프 분석 열풍의 원인에 대해 "'내가 사회에서 어느 수준일까' '낙오자는 아닐까'라는 불안을 떨치기 위해 객관적 자료로 안심하려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 측은 "Z세대는 셀프 분석을 통해 자신의 정보를 직업·진로를 탐색하거나 인간관계를 확장하는 등 실제 가치를 높이는 데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최 연구위원은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정답보다는 나만의 브랜드 가치를 키우려 노력을 지속하는 게 Z세대의 강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