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유키오(76) 전 일본 총리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년을 맞아 “잘못은 제대로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민주당 소속으로 2009년 9월~2010년 6월 총리직을 지냈던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의 식민지배 가혹 행위에 대한 사죄 의사를 꾸준히 밝혀 온 원로 정치인이다. 그러나 윤덕민 주일 대사는 추도사에서 ‘학살’이나 ‘진상 규명’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아 대비됐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1일 도쿄 지요다구 국제포럼에서 개최된 ‘제100주년 간토대진재(대지진) 한국인 순난자(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후 기자들과 만나 “일본 정부의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한국·조선인 학살에 입다물고 있는 건 대단히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잘못에 대해선 제대로 사과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토야마 전 총리는 “나쁜 일을 한 데 대해선 정직하게 정부가 책임을 다해야 하고, 도쿄도와 가나가와현도 책임을 져야 한다”며 “그것을 못하고 있어 유감이고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이 책무를 다해야 하지만, 한국이 대신하는 해법을 제시해 죄송스럽고 감사하다”고 했다.
반면 윤 대사는 이날 추도사에서 ‘학살’이란 단어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무고하게 희생된” “억울하게 희생된” “불행한 과거사” 등의 표현을 썼을 뿐이다. 정확한 희생자 수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데도 진상 규명의 필요성조차 거론하지 않았다. 윤 대사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직시하면서 상호 이해를 깊이 한다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며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인 한국과 일본은 진정한 동반자로서 미래지향적 협력을 지속하고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사의 추도사는 결국 일본에 책임을 묻기보단, 한일 우호 정신을 강조하는 데에만 초점을 둔 셈이다. 한 전직 외교관은 “과거 추도식에선 한국 대사가 (일본의) 학살이나 진상 규명을 언급한 적이 있다”며 “(오늘은) 일본 정치인 10여 명이 추도식에 참석한 흔치 않은 자리였던 만큼, 일본 측이 진상 조사에 협조해 줄 것을 완곡한 어법으로라도 요구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날 추도식은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도쿄본부가 주최하고 주일한국대사관과 재외동포청이 후원했다. 민단은 매년 조촐한 추념식을 열었으나, 올해엔 비극 100년을 맞은 만큼 처음으로 한일 정치인도 초청해 대규모로 개최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 외에도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 후쿠시마 미즈호 사민당 대표가 참석했고, 집권 자민당의 다케다 료타 의원도 일한의원연맹 간사장 자격으로 참석해 조선인 희생자를 추도했다. 간토 학살을 공식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주요 인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한의원연맹 회장인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참석하지 않고 조화만 보냈다.
간토 학살은 1923년 9월 1일 대지진 후 재일 조선인들을 겨냥한 유언비어가 확산되면서 일본군과 경찰, 주민들이 조직한 자경단이 조선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일본 정부가 유언비어 확산 및 학살에 관여한 사실이 문서로 남아 있는데도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자료가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