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31일 "(중국과 한국이) 이데올로기와 이념 차이를 드러낸다면 대립각을 세우게 되고 심지어는 냉전식 진영대결로 돌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석열 정부의 '자유민주주의 가치연대' 외교노선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싱 대사는 이날 '신 한중관계 수립을 위한 방향과 과제 : 한국의 시각'을 주제로 서울 도심 호텔에서 열린 글로벌전략협력연구원 주최 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혔다. 싱 대사는 "한중 양국은 서로 다른 제도를 가진 국가"라며 "구동존이와 구동화이 정신을 충분히 발휘해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말을 꺼냈다. "선린우호와 호혜상생이 양국의 유일한 선택지"라고도 했다.
이어 싱 대사는 한중관계에서 '이데올로기'를 강조해선 안 된다며 "양국과 양국 국민에게 어떤 이익도 되지 않는다. 오로지 재난적 결과만 뒤따를 뿐"이라고 지적했다. 고조되는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중국 책임론에 대해서는 "오늘날 이 상황을 초래한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고 문제해결의 열쇠도 중국에 있지 않다"며 "한반도 문제를 자국의 지정학적 전략에 포함시킨 주체는 중국이 아니라 타국"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싱 대사는 중국의 한반도 문제 해법인 '쌍궤병진'(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추진)을 재차 강조하며 "현재의 급선무는 형세를 완화해 대화와 협상을 재개하는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북한을 두둔했다.
싱 대사는 최근 부쩍 주목받는 중국 경제위기론은 '가짜뉴스'라고 일축했다. 그는 "각국 경제가 모두 적지 않은 도전에 직면해 있듯이 중국 경제에도 일부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면서 "중국 경제는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세계 경제 성장의 중요한 엔진이 돼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올 상반기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5.5% 증가했다며 수치도 제시했다. 그러면서 "소수의 서방 정치인과 언론은 중국 경제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이른바 '중국 경제 붕괴론', '중국 경제 정점론'을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도 날을 세웠다. 싱 대사는 "일각에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움직임을 보이며 소위 '디리스킹(de-risking), 디커플링(decoupling)과 공급망 단절'을 추진하고 있다"며 "세계의 분열을 시도하고 진영 대결을 일으켜 국제질서와 세계의 평화·안정·발전에 심각하고도 거대한 타격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싱 대사는 한국이 주최하는 한중일 정상회의가 올해 안에 열릴지에 대해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그는 세미나 후 기자들에게 "얼마 전 중국 칭다오에서 왕이 외교부장이 '한중일은 재출발을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면서 "재출발은 전진의 의미"라고 풀이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께서 불러만 주시면 언제든 찾아뵙고 인사드릴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