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9월 1일 간토대지진 발생 직후 일본에서 조선인들이 학살당한 지 100년째. 아직도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학살에 가담한 일본 정부는 “정부 기록이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했고 한국 정부도 진상 규명이나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있을까. 역사학자인 정영환(43) 일본 메이지가쿠인대 교수의 생각은 비관적이다. 일제의 만행을 인정하면 일본 보수세력의 집권 기반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재일동포 3세인 정 교수는 간토 학살을 비롯한 재일동포사 전문가다. 그를 지난달 31일 화상으로 만났다.
-일본은 "정부 문서가 없다”며 학살 자체를 부정한다.
“민간인 자경단이 조선인을 살해했다는 것은 일본 옛 사법성인 법무성도 인정했고 재판 결과도 있다. 일본 정부가 여기까지는 부인하지 못한다. 쟁점은 일본 군과 경찰의 관여인데, 군이 조선인을 살해했다는 기록은 계엄사령부 내부 보고서에 있다. (경찰을 관할한) 내무성은 '조선인들이 폭탄을 들고 방화를 하니 경계하라'는 전문을 전국에 보내 유언비어를 유포했다. 경찰이 조선인 학살의 진상을 왜곡 발표하자고 모의한 지침도 있다. 모두 공식 문서로 남아 있는 증거다.”
-일본이 명확한 사실을 부정하는 이유는 뭔가.
“일본은 오랫동안 보수 정당인 자민당이 집권해 왔고, 그 지지층은 일본의 가해 책임에 최대한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싶어 한다. 역사수정주의가 일본에서 득세한 후로는 진상 조사를 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 학살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조선인들이 폭동을 기획하는 등 문제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이고 치안 유지를 위해 군대가 출동해 조선인들을 살해한 것은 정당 방위였으므로 학살이 아니라는 논리다. 조선인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킨 것이다.”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에 진상 규명을 제대로 요구한 적이 없다.
“간토대지진 당시 불경죄로 수감됐던 박열이 해방 직후 석방된 것을 계기로 재일조선인연맹이 일본 내무장관에게 진상 규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연맹이 좌익단체라는 이유로 일본 정부가 1949년 해산시키자 한국 정부가 동의했다. 냉전 체제 속에서 진상 규명보다 반공을 더 중시할 때였다. 이 때문에 몇 년 뒤 한국 정부가 뒤늦게 조사하려 했을 때 재일동포들이 협조하지 않았다. 이후 한국 정부는 간토 학살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일본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한다면 그동안의 무관심에 대한 자기 성찰도 동시에 해야 한다.”
-이제라도 진상 규명을 요구한다면 일본이 응할 가능성은.
“막연히 진상 규명을 요구하면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 보수세력은 역사 문제를 인권의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고 외교적 국익이 걸린 사안으로 본다. 국회는 물론이고 지방의회에서도 가해의 역사 지우기에 심혈을 기울인다. 올해 일본의 여러 박물관 등에서 ‘간토대지진 100년 기념 전시회'가 열렸지만 대부분 학살에 대한 내용은 쏙 뺐다. 우익들로부터 항의받을 것을 의식한 행동이다.
한국 정부가 진상 규명을 원한다면 ‘어떤 시기의 무슨 자료를 달라’는 식의 구체적인 요구부터 해야 한다. 제국주의 시기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한 국제 공동연구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실에 다가가는 방법도 있다. 일본 계엄군의 조선인 살해를 증명한 자료도 패전 후 일본이 없애려 했던 일본군 자료를 미군이 입수해 보관하다 공개된 것이다.”
-한국인 개인이 진상 규명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도 있을까.
“한국에선 간토 학살을 ‘재일 조선인이나 재일 중국인에게 일어난 사건’이라고 멀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희생자들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이었다는 건 분명하다. 청년들이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조부모 등 윗세대에게 간토 학살에 대해 의식적으로 물어보았으면 좋겠다. 묻혔던 진실을 밝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