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물 보내고 팩스전송 요구… 단속 피하려 '아날로그' 돌아간 보이스피싱

입력
2023.08.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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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단속 세지자 과거 수법으로 회귀

지난달 27일 경기 하남시 A씨 자택에 우편물이 하나 도착했다. 발신인은 '중소기업 SOS 센터'.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 육성자금 지원 계획에 따라 저리로 자금을 대출해 준다는 안내장과 함께, 신청서 한 장이 동봉돼 있었다. 그런데 A씨의 눈길을 끄는 특이한 문구가 있었다. '신청방법: 신청서 기재 후 팩스로 접수하세요.' 무조건 팩스로만 받는다는 것이었는데, 경찰 조사 결과 이 우편물은 보이스피싱 조직이 사정 급한 이들의 등을 치려고 만든 가짜 안내문이었다.

팩스만 써야 한다는 이 안내장처럼, 최근 보이스피싱 조직의 사기 수법은 과거의 '아날로그' 방식으로 회귀하고 있다. 예전엔 PC나 스마트폰 등을 이용한 '디지털'을 선호했지만, 경찰이 메시지·전화 이용 보이스피싱을 강력하게 단속하면서 잘 걸리지 않는 예전 수법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30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최근 가짜 우편물을 이용한 전화금융사기가 빈발하는 등 과거 보이스피싱 초기의 악랄하고 전통적인 방식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경찰은 보이스피싱의 기본 구조가 바뀐 것은 아니지만, 최근 세부적 수법이 변화하고 있는 양상을 포착했다. 금융기관 직원인 척 접근해 저리로 대출해주겠다고 속이거나 수사기관의 탈을 쓰고 위험을 알리는 접근 방식은 여전하다. 대신 전화 대신 우편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이다.

우편물은 수신자가 개봉하기 전까지 내용을 알 수 없어 사전 차단이 어렵다. 또한 그럴듯하게 양식을 편집하만 만들면 '실제 금융기관이나 관공서가 공식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신뢰를 줄 수 있다. 게다가 경찰이나 통신사 등 관계기관의 치밀한 감시망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경찰은 "범죄조직이 가짜 우편물을 발송하거나 직접 우편함에 넣는 사례가 다수 확인돼 수사 중"이라고 전했다.

수사를 명목으로 피해자를 감금하는 등 신상을 직접 위협하는 수법도 증가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강원 춘천시의 20대 여성 B씨는 수사기관을 사칭한 조직으로부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송파구의 모텔에 투숙하라"는 말을 듣고 서울에 왔다가 사흘간 감금돼 1억여 원을 뺏겼다. 다른 20대 여성 C씨는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24시간 영상통화를 강요 받거나 신체검사 명목으로 불법촬영을 당하기까지 했다.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들 조직은 피해자에게 "휴대폰 공기계를 사용하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휴대폰에 설치된 백신 애플리케이션(앱)과 금융기관의 악성 앱 차단 기능 등을 무력화시키려는 목적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고도화된 보이스피싱 대응·차단 체계를 회피하기 위해 오히려 전기통신금융사기 초기의 전통적 수법이 이용되고 있다"며 "피해자 신고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신상을 직접 위협하는 악랄한 방식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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