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10시 중국 베이징 서우두국제공항 2터미널 2층. 상기된 표정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출국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의 가슴에는 북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나란히 박힌 이른바 '쌍상배지'가 달려 있었다. 국경 봉쇄로 중국에 발이 묶여 있다가 3년 7개월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북한 주민들이었다.
북한 국영 항공사인 고려항공 소속 여객기(JS151편)는 이날 오전 8시 30분쯤 평양 순안공항을 떠나 오전 9시 30분쯤 베이징에 도착했다. 북한 여객기가 베이징에 착륙한 것은 2020년 1월 시작된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은 그간 국경을 전면 봉쇄하고 중국과의 인적 교류도 중단했다. 5만~7만 명으로 추산되는 중국 내 북한 무역일꾼, 노동자, 유학생 등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출국장으로 향하는 북한 주민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낀 채 대형 여행용 가방 3, 4개씩을 카트에 싣고 빠르게 걸었다. 기타 같은 악기를 멘 청년들도 눈에 띄었다. 베이징 옥류관을 비롯한 북한 식당에서 공연을 하는 노동자로 추정됐다. 기타를 멘 20대(추정) 남성에게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소감을 물었다. 평양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소개한 이 남성은 "정말, 정말 좋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대다수 주민들은 기자들에게 적대적이었다. 특히 한국 기자들에게 날 선 반응을 보였다. 통솔을 담당한 중년 남성은 "네가 뭔데 (귀향하는) 감상을 묻네? 저쪽으로 가라, 우리 사람들 찍지 말라"며 기자를 거칠게 밀쳐내기도 했다. 일부 북한 주민들은 중국 공안(경찰)에게 "여기 남측 기자들이 있다"며 취재를 막아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배치돼 있던 공안들은 기자들에게 휴대폰 등으로 찍은 사진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고려항공 여객기는 오후 1시 5분쯤 이륙해 평양으로 돌아갔다. 이날 베이징을 오간 여객기는 러시아산 투폴레프(Tu)-204 기종으로 150명을 태울 수 있다. 입국장에 모인 인원도 그 정도 규모로 추정됐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1일 "올해 여름·가을에 북한 항공사의 요청에 따라 '평양-베이징-평양' 여객 노선 정기 항공편의 운항 계획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고려항공은 주 3, 4회 취항 허가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중국 내 북한 노동자들의 귀국 행렬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폐쇄됐던 북중 간 육로 왕래도 재개될 조짐이다. 북한은 지난달 27일 6·25전쟁 정전협정기념일(북한의 전승절)을 맞아 중국과 러시아 외교 사절단을 받아들였고, 이달 16일에는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국제태권도연맹(ITF)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는 북한 선수단을 태운 버스가 북한 신의주와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잇는 압록강 철교를 건너기도 했다. 다음 달 개막하는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북중 인적 교류가 정상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