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한국 문화 바람은 만화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만화계 오스카'로 불리는 미국 하비상 국제도서 부문에 지난 3년간 매년 한국 작품이 후보로 오른 건 그 돌풍의 단면이다. 그 결과 '풀'(김금숙·2020)이 한국 최초, '엄마들'(마영신·2021)이 2년 연속 수상이란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숨은 조력자로는 이 작품을 모두 번역한 한국계 캐나다인 번역가 재닛 홍(43)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이번에는 '나목'(The Naked Tree)으로 영미권 독자들을 만난다. 한국 문학의 거목 박완서의 동명 장편소설을 김금숙 작가가 재해석한 그래픽노블 작품으로, 세계적인 만화 출판사 드론앤쿼털리(Drawn & Quarterly)가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번역 출간을 결정해 이달 22일 출간 예정이다. 재닛 홍 번역가는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여성 작가들에게 끌리는 편"이라고 이번 작품에 뛰어든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을 번역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했다"며 "좋은 기회가 와서 바로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금숙 작가님이 재해석한 작품이라 더 수월했다"고도 했다. 그와 김금숙 작가는 벌써 세 번째 호흡을 맞추는 사이다.(2022년 후보작 '기다림'도 그가 번역했다.) 김 작가의 문체나 목소리, 스토리텔링 방식 등을 잘 알고 있어 상대적으로 번역이 수월했다는 것이다.
두 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간 재닛 홍이 한국 문학을 처음 접한 건 대학 때였다. 수업 과제로 번역한 하성란의 '옆집 여자'가 2001년 코리아타임스가 주관하는 번역상 대상을 받으면서 자연스레 번역가의 길을 걷게 됐다. 어느덧 22년이 넘는 세월, 배수아 하성란 한유주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며 한국 문학 '홍보대사'로 활약해 온 그는 최근 변화를 체감한다. 한국 문학의 입지가 확실히 넓어졌다는 것.
그중에서도 영어로 번역된 작품 자체가 거의 없었던 그래픽노블의 성장은 두드러진다. 그는 "한국 만화가들이 폭넓게 공유될, 가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여러 수상 결과로 입증했다"면서 "한국 만화는 세계적으로 보면 이제 막 주류로 들어서기 시작한 단계"라고 풀이했다.
그래픽노블 번역만의 어려움도 있을까. 무엇보다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했을 때 단어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난관이라고 그는 답했다. 크기가 제한된 말풍선이나 컷 안에 글을 써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로 대사로 이어지는 장르적 특성상 인물의 성격과 대사 톤을 살리는 번역에도 일반 문학 작품보다 더 신경 쓴다. 까다로운 점도 있지만 그림과 함께 스토리텔링이 진행되는 그래픽노블 번역 작업은 늘 반갑다.
한국 문학 팬을 자처하는 재닛 홍은 번역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도 '그 작품을 사랑하는가'라고 강조했다. "작가의 의도를 충족시키고 원문의 분위기(spirit)에 충실하면서 대상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좋은 번역. 좋은 번역을 위해서는 번역가의 작품에 대한 열정이 중요하다고 그는 믿는다. 번역·출간·홍보 전 과정에서 전천후로 관여하는 번역가의 노고가 없다면 "한국 문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그는 단언했다. 그 공로를 인정한다면 적어도 "해외 수상 소식을 전하면서 번역가 이름을 생략하는 일"이 더는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고도 했다.
올해는 소설가 재닛 홍을 만나볼 가능성도 있다.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한 그는 지난 5년간 제주도 우도를 배경으로 해녀의 삶을 소재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제 소설을 올해 안에 완성하는 게 또 다른 목표예요. 훌륭한 한국 책들이 너무 많아서 더 많이 (번역해) 소개하고 싶은데, 둘 다 해낼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