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관문'으로 불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10일(현지시간) 자율주행 산업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안전을 우려한 시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완전무인택시(로보택시)의 24시간 운행이 허용되면서다.
그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선 제너럴모터스(GM) 크루즈, 알파벳(구글 모기업) 웨이모가 심야 시간대 등 제한된 조건에서만 유료로 승객을 받아 왔는데 앞으로는 시간대나 기상 상태 등과 관계없이 도심 구석구석을 달릴 수 있게 됐다. 누구나 카카오택시나 우버를 호출하듯 운전자 없는 택시를 불러 타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캘리포니아주 교통 규제 당국인 공공시설위원회(CPUC)는 이날 로보택시의 연중무휴 운행을 허가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투표 결과 찬성이 세 표, 반대가 한 표였다.
이 안건은 당초 6월 투표에 부쳐질 예정이었지만 샌프란시스코시와 시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두 차례 논의가 연기됐다. '최후의 날'로 예고된 이날도 수백 명의 시민들이 CPUC 앞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는데 당국은 장시간 논의 끝에 결국 무인택시 업체들의 운행 확대 요구를 받아들였다. 안건의 효력은 즉시 발생했다. 다만 GM과 웨이모는 "점진적으로 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기준 샌프란시스코에선 GM 크루즈와 웨이모의 로보택시 약 500대가 운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크루즈의 경우 보조 운전자조차 아예 탑승하지 않는 완전무인 형태로 도로에 차량이 뜸해지는 오후 10시~오전 6시에 샌프란시스코 북서부 일부 지역에 한해 유료 택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웨이모는 무인 운행 시 무료로만 승객을 태우는 등 더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금까지 로보택시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두 업체는 수익성 확보를 위해 올 들어 당국에 "운행 제한을 풀어달라"고 계속 요구해 왔다. 이들 업체는 24시간 유료 운행이 허용되면 샌프란시스코가 명실상부 자율주행 선도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안전한 거리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란 논리를 폈다. 웨이모 측은 "100만 마일이 넘는 완전자율주행 동안 보행자나 자전거와 충돌한 적이 한 번도 없고 차량 대 차량 충돌의 경우 (웨이모 때문이 아닌) 사람 운전자의 규칙 위반이나 위험한 행동이 원인이었다"고 밝혔다.
찬성하는 쪽에선 또 "로보택시가 확대되면 장애인 이동성도 커질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사람 택시 운전자들은 신체장애가 있는 탑승객 태우기를 꺼리지만 무인택시는 그런 판단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 차별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시와 많은 시민들은 "기술 마루타가 될 수 없다"며 로보택시 확대를 강하게 반대해 왔다. 시 교통청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부터 자율주행차와 관련된 사건 사고가 약 600건 보고됐다고 한다.비록 로보택시가 사람을 치는 것과 같은 큰 사고는 일으키지 않았지만 소방차의 이동을 가로막거나 주행 중 급정거하는 등 불완전한 모습을 보이면서 교통 체증과 시민 불안을 키우고 있다고 시는 주장했다. 여기에 무인택시가 늘면 택시나 우버 운전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컸다.
그럼에도 규제 결정 권한을 가진 CPUC가 로보택시 운행을 전면 허용하면서 샌프란시스코는 '세계 자율주행 산업의 허브'로 입지를 굳힐 수 있게 됐다. 샌프란시스코엔 이미 당국 승인을 받아 자율주행을 테스트 중인 업체가 40여 곳에 이르는데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기술 개발과 시험을 위해 이 도시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결정은 로보택시가 조건부 운행 중인 로스앤젤레스·오스틴·피닉스 등 미국 내 다른 도시와 다른 국가의 서비스 확대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스타트업 포티투닷 등이 유료로 승객을 받고 있지만제한된 구역에서 제한된 속도로만 운행하고 있어 로보택시 전면 도입까진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