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노페디'
피아노곡이다. 당신은 이 음악을 안다. CF와 영화, 드라마 등에서 배경음악으로 무수히 쓰인 곡이기 때문이다. 다만 제목을 몰랐을 뿐이다. 작곡가의 이름은?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1866~1925)다. 음악에 비해 작곡가의 이름은 너무 덜 알려졌다.
피아노 전공으로 음악대학을 졸업한 뒤 독일 베를린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공부한 유신애 작가가 쓴 '베토벤 빼고 클래식'에는 제목 그대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처럼 곡명과 생애까지 널리 알려진 작곡가가 아닌 '유명하면서도 유명하지 않은' 클래식 음악가들의 이야기가 빼곡하게 들어차있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을 다녔던 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교재 '하농'을 작곡한 샤를 누이 아농(1819-1900), 역시 피아노 학원에서 제일 처음 배우는 교본 '바이엘'을 처음 작곡한 페르디난트 바이어(1803-1863), 역시 피아노 교재로 많이 사용하는 '소나티나'를 작곡한 '덴마크의 베토벤' 프리드리히 쿨라우(1786-1832)가 대표적이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작곡가들의 뒷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책에는 '유명한 음악가들의 덜 유명한 이야기'도 솔찬하다. 그저 반주곡쯤으로 여겼던 아르헨티나의 탱고를 무대에서 연주하는 '작품'의 경지로 승화시킨 피아졸라(1921-1992), 가야금이나 거문고에 주로 쓰는 연주 기법(농현)을 서양 악기에 적용시킨 윤이상(1917-1995), 핀란드 국민 음악의 대가로 통하며 92세까지 장수했지만 인생 후반에 너무 넉넉한 연금을 받는 바람에 작품은 그다지 많이 남기지 않은 시벨리우스(1865-1957), 모차르트와 피아노 대결을 펼쳤을 정도로 실력자였으나 피아노 공장을 운영해 떼돈을 벌었던 무치오 클레멘티(1752-1832),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소문을 퍼트려 클래식계에서 마케팅의 힘을 보여주었던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 영국인들이 에드월드 엘가(1857-1934)의 작품으로 클래식 공연장에서 떼창을 하게 된 사연 등 흥미진진한 클래식 이야기가 풍성하다.
그저 클래식 애호가의 심심풀이 책자로 여길 수도 있지만 삶과 인품이 예술로 승화되기 마련, 이런 뒷이야기들은 음악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를테면, 앞서 소개한 사티의 경우 흰 생선과 하얀 치즈, 달걀 흰자 등 흰 음식만 먹는 결벽증에 가까운 식성에 대학과 군대를 모두 정상적으로 마치지 못한 게으름뱅이에다 6개월 동안 사랑을 나눈 여인을 평생 여신처럼 마음에 품고 살았는데, 이런 일화들은 그의 음악이 지닌 우울과 독특한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클래식 음악의 피와 살들이 된 이야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