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농장·무한동력 개념까지 특허신청…참다 못한 특허청 "수수료 인상"

입력
2023.07.30 18:10
특허 심사청구수수료 16% 인상
대신 등록 · 유지비용은 10% 인하


"농업 등의 생산 지역을 아파트와 함께 조성한다. 주거자들이 그 지역의 생산활동에 취업하게 하고, △식사 준비 △자녀 돌봄 △세탁 등을 공동으로 수행해 인구 대비 생산성을 높이는 공동체를 만들자."

공산주의 국가의 집단농장을 연상케 하는 이 아이디어는, 사실 대한민국 특허정보 검색서비스에 '특허 신청'으로 올라온 실제 사례다. 사회과학의 영역에 해당하는 사례 말고도, 다소 황당해 보이는 이런 특허 출원도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회전하는 장치에서 무게추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이동해, 좌우 비대칭 회전 모멘트를 발생시켜 외부 에너지 공급 없이 무한 회전하는 장치가 가능하다."

전형적인 무한동력(외부에서 에너지 공급을 받지 않고 영원히 일을 계속하는 장치) 아이디어다. 열역학 법칙에 위배되는 개념이라 실제 존재할 수 없는 장치지만, 이런 특허 출원은 지금도 계속 이어진다고 한다. 특허 신청 비용이 저렴하고, 출원에 특별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이런 아이디어들도 종종 특허를 노리고 출원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허청이 ‘묻지마식 특허 출원'에 따른 행정력 낭비를 막기 위해 다음 달부터 특허심사 청구료를 16% 인상하기로 했다고 30일 밝혔다. 이에 따라 현행 14만3,000원인 기본료는 16만6,000원으로 오르고, 청구항당 추가로 부과되는 가산료는 4만4,000원에서 5만1,000원으로 인상된다.

특허청 관계자는 "지식재산권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그에 따라 특허 출원이 느는 것은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과연 이런 것까지 특허를 신청하는지 의문이 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심사 청구료 인상 배경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특허 등록 문턱은 높아지겠지만, 특허 등록과 유지에 드는 비용을 줄여 고품질 특허를 유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특허 출원 비용이 특허 경쟁국보다 현저히 낮다는 점도 수수료 인상의 배경이 됐다. 한국의 특허 출원·심사청구 수수료는 76만 원 수준인데, 이는 유럽연합(EU·255만 원), 미국(524만 원), 중국(191만 원), 일본(203만 원)에 비해 3분의 1에서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다만 특허청은 문턱은 높이는 대신, 이미 인정받은 특허를 등록하고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주기로 했다. 심사를 통과한 기술을 특허로 처음 등록하는 설정등록비, 등록된 특허에 대한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내는 연차등록료가 10% 낮아지는 것이다. 20년 만의 인하라는 게 특허청의 설명. 이인실 특허청장은 “특허등록료 인하를 통해 발명가와 기업의 특허 등록 및 유지비용 부담을 낮출 것”이라며 “이를 통해 기술 혁신을 촉진하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전=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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