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종중(宗中) 땅 서류를 위조해 가로챈 뒤 8억 원에 팔아버린 A씨는 2020년 2월 1심에서 징역 7년(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을 선고받았다. 그러자 그는 항소심에서 판사 출신인 대형로펌 B변호사로 변호인을 교체했다. 수임료가 3,850만 원이나 됐지만, 반전을 노린 과감한 투자였다. B변호사는 상세한 의견서를 내고 증인도 새로 신청해 신문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변호사를 잘 바꿨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달은 항소심 선고일에 났다. 로펌 측이 증인신문 등으로 새롭게 밝혀진 내용을 담은 ‘변론요지서’를 수감 중인 A씨에게만 보내고 정작 재판부엔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A씨는 결국 2심에서도 같은 형을 받았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로펌은 “직원이 실수했다”며 수임료를 모두 돌려줬지만, A씨는 가만있지 않았다. 지난해 1월 로펌과 B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같은 해 11월 “로펌과 B변호사는 A씨에게 위자료 3,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변론요지서 미제출로 방어권이 침해된 만큼 정신적 손해를 당했다”는 A씨 주장이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형사사건 승패 결과 및 형량과 무관하게 A씨가 실질적으로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판단도 같았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2-3부(부장 안승호)도 지난달 27일 “A씨가 적정한 재판을 받기 위해서는 변호인이 항소심에서 새롭게 드러난 증거들에 대해 재판부에 의견을 표명하는 게 적절했다”고 밝혔다. 항소심 심리 종결부터 선고 기일까지 40여 일이 걸려 변론요지서 제출 시간도 충분하다고 봤다.
다만 위자료 액수는 깎았다. 재판부는 “수임료가 비교적 거액인 데다, 징역 7년의 실형이 확정돼 A씨의 불이익이 가볍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변론요지서가 제출됐더라도 양형 변경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펌 측이 수임료를 모두 반환한 점, 상고심 변론을 무료로 해준 점, A씨의 자녀가 로펌 측과 합의했다는 확약서를 작성한 점 등도 참작됐다. 양측 모두 상고해 최종 결론은 대법원에서 가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