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매장된 리튬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경제난과 인프라 부족 탓에 리튬의 정확한 매장량조차 알기 힘든 아프간은 중국에 '기회의 땅'이다. 자원 강국 자리를 놓고 다투는 미국이 인권 탄압을 일삼는 탈레반 정권에 싸늘한 만큼, 이 틈을 타 아프간 리튬 시장을 선점하려는 중국의 광폭 행보에 불이 붙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리튬 확보를 위해 전 세계가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아프간이 '리튬의 보고(寶庫)'로 주목받고 있다. 가장 먼저 깃발을 꽂으려는 건 중국이다. 아프간 리튬은 '캐지 않은 진주'나 다름없다. 2010년 미 국방부는 아프간에 매장된 리튬 등 광물의 가치가 1조 달러(약 1,3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매장량 1위 칠레나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에 버금가는 규모가 묻혔을 거란 예상도 있다. 아프간이 '리튬판 사우디아라비아'라 불리는 이유다.
중국은 2021년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뒤 현지 진출을 본격화했다. 마침 전기차 개발 수요와 맞물려 전 세계 리튬 시장이 들썩일 때였다. 중국 기업과 무역 업자들은 대거 아프간에 몰렸다. 민간 사업자들을 중심으로 아프간 리튬 채굴에 혈안이 된 중국을 가리켜 "19세기 골드러시를 연상시킨다"는 말까지 나왔다.
20일(현지시간) 미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중국 기업 고친은 최근 아프간 정부에 100억 달러(약 13조 원) 규모의 리튬 개발과 관련한 세부 투자 계획을 밝혔다. 고친은 지난 4월에도 아프간에 리튬 투자 의사를 밝히면서 인프라 건설과 12만 개에 달하는 일자리 창출 계획을 내놨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은 흰색에 석유나 금에 버금가는 산업적 가치를 지녀 '하얀 석유', '백색 황금'이라고 불린다. 최근 들어 전기차 수요가 폭발하면서 몸값이 덩달아 치솟았다. 2021년 이후 1년 사이에만 국제 리튬 가격은 8배가량 폭등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40년까지 리튬 수요가 2020년 대비 40배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등 세계 리튬 매장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중남미 국가들이 일찌감치 '리튬 국유화'를 선언한 것도 치솟는 가치 때문이다. 원자재 시장 조사업체인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BMI)는 유럽과 미국, 중국 등에서 전기차가 보편화될 2030년까지 전 세계가 리튬 부족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대해 헨리 샌더슨 BMI 편집장은 "리튬 가공 능력을 앞세운 중국이 리튬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 아프간으로 향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아프간 입장에서도 중국은 나쁘지 않은 교류 파트너다. 아프간은 2021년 탈레반 재집권 이후 서방 제재 등으로 최악의 경제난이 덮친 상태다. 미국은 인권 침해 등을 이유로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미 국무부는 미국이 현재의 아프간 탈레반 정권을 인정할지 여부는 아프간 여성 인권 문제와 연관돼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탈레반이 서방으로부터 배척당하는 한, 아프간은 선택이 아닌 필요에 의해 중국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WP)이란 전망이 많다.
다만 리튬의 막대한 가치를 고려할 때 서방 역시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을 완전히 배격할 수는 없을 거란 시각도 있다. 탈레반 역시 급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 사우디 일간 아랍뉴스에 따르면 탈레반 관리들은 "중국은 물론 외국과의 리튬 계약을 서두르지 않는다"며 "우리 자신의 이익만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