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억 원 규모의 국가 백신 입찰 담합으로 녹십자·SK디스커버리·광동제약·유한양행 등이 폭리를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짬짜미로 기초금액(낙찰 추정가격)보다 높게 정해진 백신값은 고스란히 국민 혈세로 충당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32개 백신 사업자가 조달청이 발주한 170개 백신 입찰(2013~2019년)에서 담합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409억 원을 부과한다고 20일 밝혔다. 백신 제조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6개 백신 총판(광동제약·녹십자·보령바이오파마·SK디스커버리·유한양행·한국백신판매), 25개 의약품 도매상이 대상이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초기엔 의약품 도매상끼리 담합했으나, 정부가 백신 구매 방식을 전체 물량의 5~10%만 사들이는 단가계약에서 연간 백신 물량을 계약하는 총량구매 방식으로 바꾼 2016년부터 백신 총판이 직접 들러리를 섭외해 낙찰을 받았다. 오동욱 입찰담합조사과장은 “백신 총판이 전화로 도매상을 섭외하고, 향후 해당 도매상과 거래할 때 백신 공급가격을 낮춰주는 식으로 혜택을 줬다”고 설명했다.
특히 녹십자와 보령바이오파마, SK디스커버리는 2011년 인플루엔자 백신 담합으로 한 차례 제재를 받았음에도 재차 담합에 참여했다. 이들이 짬짜미를 벌인 건 모두 정부 예산으로 실시되는 국가예방접종사업 백신으로, 인플루엔자 백신을 포함해 간염·결핵·자궁경부암·파상풍·폐렴구균 등 24개 품목이다.
백신 사업자의 입찰 담합은 정부 예산 낭비로 이어졌다. 이들은 170건 중 147건을 계획대로 낙찰받는데, 그중 117건(80%)은 낙찰률(조달청이 제시한 기초금액 대비 낙찰금액 비율)이 100%를 웃돌았다. 정부에 비싼 값으로 백신을 팔았다는 뜻이다. 기초금액은 조달청이 시장가격, 지난해 계약가격 등을 검토해 정한 가격으로 통상 최저가 입찰에서 낙찰 ‘상한선’으로 여겨진다. 오 과장은 “통상적인 최저가 입찰의 낙찰률이 100%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제조사와 6개 총판 중 과징금이 가장 많은 곳은 한국백신판매(71억9,500만 원)였다. 이어 녹십자(20억3,500만 원), SK디스커버리(4억8,200만 원), 글락소스미스클라인(3억5,100만 원) 순이었다. 공정위는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추후 질병관리청과 제도 개선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