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에 걸린 건가, 아니면 치정 스캔들 때문인가."
시진핑 3기 체제의 '슈퍼스타' 친강(57) 중국 외교부장이 3주 넘게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두고 억측이 쏟아지고 있다. 초기엔 코로나19 감염설을 비롯해 건강상의 이유라는 추측이 나왔지만 최근 들어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베이징 외교가에 퍼졌다.
비위에 따른 숙청설도 나돈다. "홍콩 방송사 아나운서와의 불륜이 발각돼서", "주미국 대사 시절 민감한 군사 정보를 미국에 유출한 혐의 때문에" 등 각종 이유가 따라붙는다. 중국 정부가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 의혹이 더 커지고 있다.
친 부장은 지난달 25일 이후 19일로 24일째 '증발'한 상태다.
외교가에선 친 부장의 숙청 가능성에 그다지 무게를 싣지 않는다. 친 부장은 올해 3월 출범한 시진핑 3기 체제에서 가장 조명받은 인물이다. 외교부 대변인 시절 미국을 향한 거친 언사로 명성을 얻은 그는 지난해 12월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의 후임으로 외교부장에 임명됐고 올해 3월 국무원 최고지도부인 국무위원에 올랐다. 왕 위원이 외교부장에 임명된 뒤 5년 걸렸던 코스를 3개월 만에 주파한 것이다.
중국 정치평론가 펑셩핑은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중국이 사생활을 구실로 고위 관료를 인사 조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친강은 시 주석이 집권 3기에 돌입하며 중용한 사람"이라며 "스캔들 때문이라는 보도는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친 부장의 사생활 루머를 키우는 건 중국 정부의 태도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17일 정례브리핑에서 친 부장 불륜설이 사실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친 부장이 지금 중국의 외교부장이 맞는가"라는 질문에도 그는 "외교부 웹사이트를 찾아보라"고만 답했다. 마오 대변인은 평소 근거가 불분명한 외신 보도가 나오면 "근거 없는 억측"이라며 부인했지만, 친 부장 관련 의혹은 차단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의 설명이 바뀐 것도 석연치 않다. 마오 대변인은 11일 정례브리핑에선 친 부장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건강상의 문제"라고 했으나, 엿새 만에 사실상 말을 바꿨다. 호주 싱크탱크 리처드 맥그리거 선임연구원은 미국 주간지 타임에 "친강의 공석 기간이 길어질수록 건강이 아닌 다른 이유가 존재할 개연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철저한 비밀주의로 무장한 중국 정치 시스템이 거듭 부각됐다. 대니얼 러셀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부회장은 미국 뉴욕타임스에 "엄격히 통제된 중국 정치의 불확실성이 또 한번 드러났다"며 "중국의 외교관들은 혼란스러울 것이고, 중국에 주재하는 다른 나라 외교관들은 중국 외교부의 관료주의를 더욱 의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학습시보 편집장을 지낸 미국 시사평론가 덩위원은 RFA에 "고위 관리 한 명이 중국 정권 자체에 대한 무한한 억측을 불러온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