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줄어서 와인 아껴 마시는 유럽...경제규모 미국의 ‘반 토막’ 났다

입력
2023.07.18 19:00
17면
WSJ “유럽 점점 가난해진다” 보도
미국 비해 EU 경제 ‘반 토막‘ 추락
저성장에 고령화·고물가로 휘청


요즘 유럽 이야기
“프랑스인들이 대표 미식이었던 푸아그라와 와인 소비를 줄이고 있다. 스페인은 전 세계 올리브유의 절반을 생산하지만 스페인인들은 올리브유를 아껴 먹는다. 이탈리아에서는 주식이자 정체성이나 다름없는 파스타 가격 급등으로 불매 운동까지 벌어졌다.”

전 세계인이 부러워했던 유럽 대륙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바뀌고 있다고 17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저성장과 고물가, 고령화 등으로 악화일로에 있는 유럽의 경제 상황 탓이다.

“미국 절반 수준 된 유로존 GDP”

WSJ은 유럽인들의 소비지출이 크게 위축됐다고 보도했다. 유럽인들의 지갑이 닫힌 이유는 소득이 줄어들어서다. 유럽연합(EU)의 경제 규모는 미국의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든 상태다. 2008년 유로존과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각각 14조2,200억 달러(약 1경7,931조 원)와 14조7,700억 달러로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옛날 일이 됐다. 현재 유로존 GDP는 15조700억 달러로 미국(약 26조8,600억 달러)에 미치지 못한다(올해 2분기 기준). EU를 탈퇴한 영국 GDP(약 3조 달러)를 합쳐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제 규모가 지난 15년간 82% 성장할 때 유럽은 6% 증가에 그쳤다.

유럽정치경제센터는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 추세가 지속된다면 2035년까지 미국과 EU의 1인당 GDP 격차가 오늘날의 일본과 에콰도르 사이의 격차만큼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U와 영국의 지난해 1인당 연평균 임금 역시 코로나19 이전이던 2019년에 비해 주저앉았다. 인플레이션 등을 반영한 독일의 실질 임금은 2019년 이후 약 3% 하락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각각 3.5% 떨어졌다. 국가 부도 사태를 겪은 그리스는 6%나 줄었다. 같은 기간 7만3,000달러에서 7만7,000달러로 소득이 늘어난 미국과 대조적이다.

자연스레 소비 심리도 얼어붙었다. 15년 전 전 세계 소비지출의 25%를 차지했던 EU의 점유율은 18%로 뒷걸음질 쳤다. 유럽의 경제 강소국인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도 유통기한이 임박한 ‘반값 식료품’을 사려는 줄이 늘어선다고 WSJ은 전했다. 유사한 서비스가 유럽 전역에서 각광받는다. 소매점과 식당의 재고를 파는 ‘투굿투고’의 유럽 이용자 숫자는 7,600만 명으로 2020년 말보다 3배가 늘었다.

고령화에 생산성 하락, 물가는↑

WSJ은 “일보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유럽의 분위기와 고령화가 수년간의 저성장을 초래했다”고 짚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치명타가 됐다.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치솟은 물가는 곪아가던 유럽 경제의 환부를 터트렸다. 유럽의 주요 시장이었던 중국의 부진도 영향을 미쳤다. 유로존은 GDP의 절반가량을 수출에 의존한다. 내수가 튼튼한 미국과 달리 EU는 세계 경제가 부진하면 그대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코로나19 쇼크로부터 경제를 보호하려는 각국 정부의 대응도 부적절했다. 유럽에선 일자리를 보존하려 고용주에게 보조금을 지급했다. 반면 미국은 주로 개인을 상대로 현금성 지원에 나서 소비를 촉진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JP모건 연구소의 크리스 위트 소장을 인용해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대응으로 사람들의 은행 계좌에 돈이 쌓였다”고 전했다. 이 돈은 미국이 높은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경제 침체를 피할 수 있었던 요인이 됐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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