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40대 개혁 기수’ 총리 선출 고배… 정국 안갯속으로

입력
2023.07.13 22:20
상원 대거 반대… 과반 확보 실패
19일, 20일에 2, 3차 재투표 예정
분노한 시민들 반대 집회 가능성

태국 유력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히던 피타 림짜른랏(43) 전진당 대표가 상·하원 합동 총리 선출 투표에서 고배를 마셨다. 군부 몽니 탓에 과반 이상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2030 유권자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거세게 불던 ‘피타 돌풍’이 군부 벽에 막히면서 시민들의 분노도 커지고 있다. 태국 정국은 점점 더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분위기다.

13일 방콕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피타 대표는 이날 태국 의회에서 진행된 총리 선출 찬반 투표에서 절반에 못 미치는 324표를 얻었다. 총리에 당선되려면 전체 의원 750명(상원 250명·하원 500명)의 과반인 376명의 찬성표를 얻어야 하지만 52표가 부족했다.

이번 부결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5월 총선에서 151석을 얻어 제1 야당이 된 전진당은 야권 정당들과 손을 잡아 하원 500석 중 312석을 확보했다. 과반인 ‘매직 넘버’를 달성하려면 60석 넘는 상원 이탈표가 필요했지만, 상원은 군부가 장악한 터라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이날 피타 대표에게 찬성표를 던진 상원 의원은 13명이었다.

군부 역시 노골적으로 피타 대표 앞을 가로막았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전날 “피타 대표가 출마 자격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도 총선에 나섰다는 선거법 위반 증거가 있다”며 그의 의원직 박탈 여부를 헌법재판소에 회부했다.

태국에서는 법적으로 언론사 사주나 주주의 공직 출마가 금지돼 있다. 피타 대표는 2007년 방송을 중단한 미디어회사의 주식 4만2,000주를 상속받아 보유하고 있는데, 군부는 해당 기업이 여전히 ‘언론사’ 지위를 유지한다며 문제를 제기해 왔다. 선관위가 군부 손을 들어준 것은 물론, 의원들이 이를 핑계로 “총리 후보에게 심각한 결격 사유가 있다”며 반대표를 던질 여지를 준 셈이다.

피타 대표는 이날 투표에 앞서 동료 의원들에게 “국민들의 희망과 격려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자신이 있다. 아직 나에 대한 의문이 있는 의원들에게도 최선을 다해 설명하겠다”고 표를 호소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과반 확보에 실패했지만 완전히 기회를 잃은 것은 아니다. 의회는 19일과 20일 각각 2, 3차 투표를 진행한다. 다만 남은 두 차례의 투표에서도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면, 제2 야당인 탁신계 푸어타이당이 군부와 손잡고 연정 구성에 나서 총리 후보를 낼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수 있다. 총선에서 전진당에 표를 몰아주며 군부 독재 종식을 꿈꿨던 상황에서 군부가 다시 득세하는 일이 벌어질 경우 소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태국 청년들은 전날 밤부터 방콕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내 투표를 존중하라”, “상원은 국민 뜻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지 말라” 등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태국 군경은 전날부터 의회 앞에 기동대 등 인력을 추가 배치하고 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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