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강자는 없는 걸까. 10년 넘게 할리우드를 호령해 온 월트디즈니컴퍼니가 최근 흔들리고 있다. 제작비 2억 달러 이상을 들인 대작 영화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 성적을 잇따라 거두고 있어서다. 일각에선 ‘디즈니 제국’에 균열이 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2일 흥행 집계 사이트 더 넘버스에 따르면 디즈니 최신작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전 세계 흥행 수입 2억5,206만 달러(10일 기준)를 기록하고 있다. 마케팅비를 포함해 3억 달러 넘게 들어간 영화치고는 초라한 성적표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뿐만 아니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4억6,363만 달러)와 ‘인어공주’(5억4,266만 달러), ‘엘리멘탈’(2억5,389만 달러)이 줄줄이 흥행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들 영화들은 모두 제작비 2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볼륨3’(8억3,936만 달러)이 그나마 선전했으나 할리우드 대작 영화의 대박 기준인 10억 달러를 못 넘었다. 흥행 보증 수표로 통하던 마블 영화(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도, 애니메이션 명가로 불리는 픽사 스튜디오 신작(엘리멘탈)도 기대했던 흥행 괴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대작들의 잇단 부진으로 디즈니는 2014년 이후 9년 만에 처음으로 흥행 10억 달러 영화를 배출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코로나19 대유행 기간인 2020ㆍ2021년 제외). 디즈니는 코로나19 대유행 직전인 2019년에는 ‘어벤져스: 엔드게임’과 ‘알라딘’ ‘겨울왕국2’ 등 7편이 극장에서만 1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4년 사이 변화치고는 지나치게 급격하다.
부진 요인으로는 창의성 부재가 첫손으로 꼽힌다. 디즈니가 예전 인기에만 연연해 새로운 창작물을 내놓지 못하니 관객들이 식상함을 느끼고 있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5편으로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2008) 이후 15년 만에 나온 신작이다. 주인공 인디아나 존스 역의 해리슨 포드(81)가 60대 후반에서 80대로 접어들었을 만큼 세월이 흘렀으나 영화 전개 방식과 내용은 큰 변화가 없다. ‘인어공주’는 1989년 만들어진 동명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바꿨다는 점을 제외하면 별다른 차이가 없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전편들과 다른 재미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따른다. 김효정(한양대 미래인문학융합학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는 “독창성을 확보하기보다 전통과 평판에만 기대어 영화를 만드는 게 요즘 디즈니의 전반적인 분위기 같다”고 꼬집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가 독이 됐다는 분석이 있기도 하다. 디즈니가 디즈니플러스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사 영화를 극장에서 오래 상영하지 않다 보니 관객들의 관람 습관까지 바꿨다는 것이다. 미국 연예 전문매체 버라이어티는 지난 5일 “(디즈니플러스 출범 전인) 2019년만 해도 관객들이 ‘어벤져스: 엔드게임’처럼 자신들이 좋아하는 영화 속 캐릭터를 보기 위해 여러 차례 극장을 찾았다”며 “이제 관객들은 OTT를 통한 반복 관람을 위해 기다릴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