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가 헬스 장비와 최고급 피부관리 기기를 갖췄다. 터키풍 스파도 있다. 럭셔리 헬스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철로 위를 달리는 이동 시설이다. 장거리 여행 시 기차를 즐겨 타는 것으로 알려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용 열차 얘기다. 회의실이 아닌, 열차 내 다른 공간 모습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10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은 러시아 대통령실 활동을 추적하는 탐사매체 '도시에센터(Dossier Center)'가 입수한 열차 도면 문건을 토대로 이같이 보도했다. 해당 문건에는 푸틴 대통령 전용 열차 개조를 맡은 러시아 업체 '지르콘 서비스'의 홍보용 책자와 크렘린궁이 이 업체에 전달한 요청 내역 등이 포함돼 있다. 방송은 "(회의실을 제외한) 열차의 다른 구성 요소는 철저히 보호되는 국가기밀이었다"고 전했다.
CNN에 따르면 문건 중 하나는 지난해 8월 5일 작성됐다. 당시 교통 당국은 '기차 헬스장 칸에 운동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았는데, 구체적으로는 △하체 운동기구 2개를 하체 기구 1개와 등 운동기구 1개로 바꾸고 △미국 '호이스트' 브랜드 제품으로 바꿔 달라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호이스트 헬스 기구는 상당한 고가 장비로 푸틴 대통령이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한국 헬스장에서 '푸틴 기구'로도 불린다.
눈에 띄는 건 문건 작성 시점이다. 2022년 8월 5일,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남부 미콜라이우 인근 민간인 거주 지역에 대대적 공격을 가했다. 집과 건물이 무너지고 최소 10명이 다쳤다. CNN은 "(전쟁이 한창일 때) 모스크바 대통령궁의 관리들은 '잔인한 전쟁'과는 동떨어진 문제에 몰두했던 셈"이라고 꼬집었다.
다른 구성 요소를 봐도 '초호화 열차'라고 할 만하다. 피부관리실에는 마사지를 받는 침대, 고주파로 피부 탄력을 높이는 '하이엔드 뷰티 기구'가 있었다. 욕실에는 터키식 스파, 샤워 시설 등도 설치돼 있었다.
러시아 대통령실은 CNN에 "푸틴 대통령은 그런 기차를 타지도, 갖고 있지도 않다"며 연관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유출 문건에는 러시아 대통령 경호실인 연방비밀경호국(FSO)이 러시아 국영 철도사와 기차 개조 논의를 했다는 내용이 다수 담겨 있다. 또, 일반 기차에서 볼 수 없는 하얀색 통신 설비도 설치돼 있다는 점에서 '푸틴 열차'가 맞을 공산이 크다. FSO 출신 엔지니어이자 2014년 이 기차에 통신 설비를 직접 설치했다는 글렙 카라쿨로프는 "우리나라엔 '유령 열차'가 있다. 러시아 철도 시스템에는 이 열차가 존재하지 않고 시간표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열차 운행은 전략적 측면과 함께, 푸틴 대통령의 개인적 특성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칼라쿨로프는 "비행기는 이륙 즉시 레이더에 포착되므로, 감시를 피하기 위해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바스 갈리야모프 정치 평론가는 '은둔'을 선호하는 푸틴 대통령을 좀 더 활동적으로 만들려는 대통령실 직원들의 노력인 듯하다고 추정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은 적에게 둘러싸였다고 느끼는 탓에 보호받고 싶어한다"며 "거의 여행을 다니지 않아 지방과도 접촉하지 않는데, 대통령실 직원들은 이를 우려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