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박정희·김일성 만나면 긴장 완화"... 정상회담 집요하게 요구했다

입력
2023.07.06 11:10
4면
통일부, 70년대 정치회담문서 1678쪽 공개
'북 2인자' 김영주 "정상 만나야 긴장 완화" 
"닉슨도 중국 방문해 많은 문제 해결했다" 
정상회담 성사 안 돼…"한미동맹 약화 의도"

북한이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앞두고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정상회담을 집요하게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제적 데탕트(자유·사회주의 진영 간 긴장 완화) 분위기에 편승해 한반도에 평화 기대감을 높여 주한미군 철수 등 한미동맹 약화를 꾀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도출하기 위한 비밀접촉 과정을 보여주는 남북대화 사료집에는 이 같은 정황이 담겨있다. 통일부는 6일 1971년 11월부터 1979년 2월까지 정치 분야 남북회담문서 총 2권(총 1,678쪽)을 공개했다. 통일부는 지난해에 이어 세 번째로 남북회담문서를 공개했다.

1972년 5월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대북 밀사'로 평양을 방문해 4일 김일성을 만난다. 이에 앞선 2, 3일에는 김일성의 동생이자 정권 2인자인 김영주 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장과 회담했다. 남북 당국 간 첫 고위급 회담이었다.

회담문서에 따르면 김 부장은 "통일 문제는 우리 '급'에서 되지 않는다"며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그는 "총비동지(김일성)와 박 대통령 간 정치협상을 한다면 (한반도) 긴장 완화가 될 것"이라며 "인민이 협상에 기대를 걸고 다음으로 조국통일을 빨리하는 의의를 가지게 된다"고 설득했다.

김 부장은 '반공주의자'인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3개월 전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 주석과 회담한 사실을 화제로 꺼내며 "닉슨이 중공(중국)을 방문해 많은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우리도) 수뇌자 회담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 측 대표인 이 부장은 북측의 요구에 화답하지 않았다. 그는 "양단된 상황에서 너무 섣불리 정치 협상을 했다가 희망이 큰 실망이 될 수도 있다"면서 "그래서 단계적인 방법을 착안했다"고 말했다. 단계적 방법이란 우선 인적·물적·통신 교류 등을 통해 남북 주민이 서로의 체제를 이해한 뒤 통일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으면 정상 간 만남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북한 믿지 않아…시간 끌기 목적"

북한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같은 달 29일 박성철 북한 제2부수상이 와병 중인 김 부장을 대신해 서울에 답방한다. 이 부장은 서울 영빈관 회담장에서 박 부수상을 만나 당장 정상회담 개최는 불가능하다고 먼저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가 통일을 지향하는 정치회담을 열 때는 기필코 그 회담을 성공시키는 안전판을 마련해놓고 시작하자"고 했다. 박 부수상은 "이미 김일성 수상은 박 대통령과 친우로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면서 "박 대통령께서만 응락하신다면 두 분의 상봉은 쉽게 이뤄질 수 있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과 김일성의 만남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평양·서울 고위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7·4 남북공동성명을 체결했다.

북한의 일방적인 정상회담 구애에는 숨은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은 정상회담이라는 가장 높은 수준의 화해 이벤트를 연출해 한미동맹의 틈을 벌려놓으려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미 미국은 닉슨 독트린(미군을 아시아에서 단계적 철군시키려는 계획)에 따라 미 7사단을 철수시키는 등 남측 안보 지형이 악화되고 있었다. 실제 김 부장은 이 부장과의 만남에서 "이남에서는 제국주의(미국) 군대가 철수하겠다는 데 대해 남쪽이 반대하고 있지 않느냐"며 노골적으로 묻기도 했다.

박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은 북한을 절대 믿지 않았다"면서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 시간을 벌기 위해 7·4 남북공동성명을 맺었지만 동시에 핵무기 개발 추진 등도 해나갔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이 부장과 김 주석의 면담 내용은 물론, 박 대통령과 북한 측 박 부수상의 면담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회담문서공개심의회의 검토에서 비공개로 결정한 것이다. 남북회담문서 공개 심의는 3년 주기인 만큼 2026년 공개 여부가 재논의된다.



유대근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