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면 못 보는 숙련공마저... 외국인 인력, 이젠 질적 수준도 챙겨야"

입력
2023.07.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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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현장에서 말하는 외국인 채용 실태]
인력난 해소 위해 숙련외국인 쿼터 대폭 확대
간단한 테스트로 뽑다 보니 실력 검증 안 돼
"국내 업체가 현지에서 선발할 수 있도록 해야"


“줄다리기 하자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사람 숫자만 늘려서 될 일은 아니죠.”

정부가 산업 현장의 사람 부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외국인 숙련노동자 도입을 대폭 늘렸지만 인력난이 가장 심각한 조선업계는 마냥 웃지 못하는 분위기다. 일할 사람을 늘리는 것 자체는 반가운 일이지만, '숙련공'이라는 이름을 달고 들어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정작 난도 높은 일을 맡기기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이무덕 HD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협의회장은 지난달 30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최근 외국인 숙련기능인력(E7) 비자 선발 기준이 완화되면서 숙련공 자격으로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 일부는 기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며 “현지 자격 검증 방법을 개선해 인력의 질적 확대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정부는 2020년 연간 1,000명 수준이던 E7 비자 한도를 올해부터 3만 명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이미 지난해에 용접공(600명)과 도장공(300명)에 대한 쿼터를 폐지하고, 용접공 비자 심사 때 필요한 경력증명서 제출을 2025년까지 한시적으로 면제했다. 외국인 전문 인력 선발 장벽은 낮춰 채용규모는 늘리겠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었다.

현재 E7비자 외국인 도입 절차는 '사전준비→사전수요제출→기량 검증→예비추천→고용추천 →비자발급인정서 발급→비자 발급→입국' 순으로 이뤄진다. 여기서 숙련 인력을 뽑는 핵심 절차는 한국조선플랜트협회가 현지에서 진행하는 기량 검증 단계다. 용접공을 예로 들면, 면접을 통해 본인 여부를 확인하고 용접자격증 보유 등 자격요건을 본 뒤 용접 테스트를 거쳐 비드(두 금속 조각 사이 접합부) 균일도를 평가한다.

그러나 문제는 현지 검증을 통과한 이들을 막상 국내에 데려와 다시 테스트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례가 일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 협의회장은 “입국 후 4주간 교육을 하고 치른 테스트 합격률이 50%였던 적도 있다”며 “일손이 달리는 상황에서 납기일 맞추랴 외국인 가르치랴 현장의 고충이 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교육 후 재시험을 치르면 대부분 합격은 하지만, 어쨌든 별도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왜 발생하는 것일까. 조선업계에선 △국내 업체들이 요구하는 기량과 △현지에서 치르는 기량 검증 사이에 벌어진 간극을 원인으로 꼽는다. 경력에 관계없이 자격증이나 간단한 테스트로 인력을 선발하다 보니, 다른 환경에서 대응이 어렵다고 한다. 어떤 경우엔 기본 조선도면조차 볼 줄 모르는 인력들까지 숙련공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

실제 인도네시아의 인력송출업체 관계자는 “실력이 되는 용접공들은 굳이 비싼 부대비용을 지불하고 한국에 가지 않아도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며 “그래서 경험 없는 젊은 미숙련공들이 기량 검증 통과 요령만 익혀 채용되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놨다. 외국인들이 국내에 들어오기 위해선 인력송출업체에 최대 1,000만원이 넘는 수수료를 내는 경우도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비싼 돈 내고 한국 왔는데 기술력 없다고 임금을 제대로 쳐주지 않으니 작업장을 이탈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 현장에서는 인력을 채용할 협력사들이 직접 현지에 가서 인력 수준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사람을 무작정 데려올 게 아니라 현지에서 직접 기술을 확인한 뒤 그에 맞는 사람을 뽑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협의회장은 “갈수록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질적인 부분에도 더 신경을 써야 한다"며 “비교적 비용 부담이 적은 현지에서 모든 직업훈련을 마치고 국내에선 바로 현장에 투입해야 실질적 인력난 해소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조언했다.

울산=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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