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1일 개정 반(反)간첩법(방첩법)이 발효되면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간첩 행위의 기준이 명확히 설정되지 않은 탓에 외국 기업·언론인·교민들이 일상적으로 해 왔던 행동도 이 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외자 유치를 호소하는 중국 정부가 정작 외국 기업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자해 행위를 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제기된다.
중국과의 갈등 관계에 있는 미국이 특히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니컬러스 번스 주중 미국대사는 2일(현지시간) 트위터 계정을 통해 "미국 사업체·학자·언론인들은 중국의 이 우려스러운 방첩법을 반드시 의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날 주중 미국대사관도 "중국 방첩법이 외국 기업과 연구기관, 언론인에게 법적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가져다 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중국도 '간첩 신고' 독려에 나섰다. 전날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공식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계정을 통해 새 방첩법 발효 사실을 알리며 "국가 안보는 인민을 위한 것이고 인민에 의지한다. 의심 상황 발견 즉시 신고하라"고 전했다.
2014년 제정된 중국 방첩법의 개정은 9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이번 개정 법률을 두고 우려가 특히 큰 이유는 '모호성'에 있다. "국가 안보·이익에 관한 자료 취득·매수·제공"을 간첩 행위로 규정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자료가 '국가 안보·이익'과 관련된 것인지는 적시하지 않았다. "법 적용 가능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당장 외국 기업과 컨설팅 업체, 연구기관이 방첩법 적용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정세와 시장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게 일상적 업무였으나, 중국 당국으로선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이들이 다루는 자료를 '중국 국익과 관련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게 됐다. 옌스 에스케룬드 주중 유럽연합 상공회의소장은 일본 닛케이아시아 인터뷰에서 "국가 기밀은 무엇이고 우리가 취득해선 안 되는 정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며 "일반적으로 해 온 우리의 업무가 정치화돼 버렸다"고 토로했다.
외국 기업인들 사이에선 "현지 중국인 직원 고용조차 부담스러워졌다"는 말까지 나온다. 간첩 활동을 신고하지 않은 내국인도 처벌 대상이고, 방첩에 기여한 내국인은 포상할 수 있도록 규정한 탓이다. 현지 외국 기업에 채용된 중국인 직원들로선 자신이 다니는 회사를 감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꼴이다. 베이징의 한 한인 사업가는 2일 "중국인 직원과 방첩법 관련 대화를 안 하고 있지만, 긴장감 같은 게 흐르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방첩안보센터(NCSC)도 "중국 정부가 외국 기업에 고용된 중국인들에게 첩보 활동을 돕도록 강요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일상적인 인터넷 검색이나 자료 저장도 주의가 필요해졌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방첩법 시행에 앞서 "중국 국가안보·이익과 관련된 자료·지도·사진·통계 등을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스마트폰·노트북 등에 저장하는 행위, 시위 현장 방문 및 촬영, 중국인에 대한 포교 등에 유의해 달라"고 공지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 법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적용될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일반 교민들도 당분간 간첩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행동은 조심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방첩법이 '부메랑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對)중국 투자 심리를 위축시켜 외자 유치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마이클 하트 주중 미국상공회의소장은 "중국은 (외국 기업의) 투자를 원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중국의 이러한 공격(방첩법 시행)에 대해서도 듣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안정적 경제 성장' 기조에 따라 외자 유치를 호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업의 일상적 활동을 위축시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이라는 지적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