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금이 늘었는데도 지난달 맥줏값이 1년 전보다 되레 떨어졌다. 연초 연간 상승률이 9%에 육박했던 소줏값도 거의 지난해와 같은 자리로 돌아왔다. 체감 물가가 높은 품목인 만큼 업계가 협조하기를 바란다는 정부 압박이 주효한 형국이다.
28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을 보면, 5월 맥주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07.09로 작년 같은 달보다 0.1% 하락했다. 가격이 싸진 것이다. 맥주 품목의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가 된 것은 작년 1월(-0.01%) 이후 1년 4개월 만이다.
최근 맥주값 상승률의 둔화폭은 가파르다. 1월만 해도 7.0%에 달했던 수치가 2월 5.9%로 주춤하더니 3월 3.6%, 4월 0.7%를 거쳐 5월에는 아예 제로(0) 아래로 내려갔다.
배경으로는 일단 기저효과가 꼽힌다. 맥주 가격 급등 시기가 작년 3월이다. 당시 오비맥주가 오비·한맥·카스 등 자사 제품 출고 가격을 평균 7.7% 인상했고, 하이트진로도 같은 폭으로 테라·하이트 출고가를 올렸다. 4월 이후 상승률 기준선이 높아진 것이다.
여기에 여름을 앞두고 격화한 시장 경쟁도 영향을 미쳤다. 한동안 불매 운동 타격을 받았던 일본 맥주가 한일 간 해빙 분위기에 편승해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야구장이 캔맥주 반입을 허용했다. 그 와중에 하이트진로가 국내 맥주 시장 1위 탈환을 목표로 4월 신제품 ‘켈리’를 출시하며 마케팅 공세를 강화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5월에 할인 행사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핵심 요인은 업계의 가격 인상 포기다. 이는 의외의 결정이다. 4월부터 맥주에 부과되는 세금이 작년보다 리터(L)당 30.5원 올랐기 때문이다. 주세 인상이 맥주 출고가 인상으로 이어지는 게 매년 통상적인 일이었지만, 올해는 업체들이 가격을 끌어올리지 않았다.
소주도 사정이 비슷하다. 올 초 주정(에탄올)과 병 등 원·부자재 가격, 물류비, 전기요금 인상 등의 여파로 출고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됐지만 현실화하지 않았고, 전년비 소주 물가 상승률도 1월 8.9%에서 지난달 0.3%까지 추락했다.
여기에는 주류업계를 향한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종용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월 국회에서 “소주 등은 국민이 즐기는 물품인 만큼 물가 안정을 위해 업계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주문했고, 이후 기재부와 국세청이 주류업계의 소주 가격 인상 움직임과 관련해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이런 방식의 물가 통제 시도는 현재 식품업계를 상대로도 재연되는 모습이다. 최근 추 부총리가 방송에서 라면값을 겨누자 27일 농심과 삼양식품이 잇달아 제품 가격을 내리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이날 오뚜기가 뒤를 따랐고, 롯데웰푸드와 해태제과 등 제과업계까지 가격 인하 흐름에 동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