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거인' 인텔과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삼분하고 있는 마이크론 등 미국 기업들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새 공장 설립을 예고하며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각국 정부가 자국 내 공급망 안정을 이유로 지원금을 약속하며 투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상황에서 반도체 왕좌로의 복귀를 노리는 인텔을 비롯한 미국 기업들이 이를 최대한 활용하며 영토 확정에 나선 것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인텔은 21일(현지시간) 투자자 대상 온라인 설명회를 열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를 반도체 설계·개발 분야와 사업 부문으로 분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하면 인텔이 설계한 시스템반도체를 파운드리에 맡기는 '내부' 거래에서도 매출이 발생한다. 데이비드 진스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내부 물량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모델에서 내년 제조 매출이 200억 달러 이상을 기록하며 (삼성전자를 제치고) 두 번째로 큰 파운드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와 미국 월가 투자은행(IB)의 분위기를 보면 인텔의 호언장담에는 물음표가 많이 찍히고 있다. ①자체 시스템반도체를 개발 중인 인텔이 잠재적 경쟁사인 엔비디아 등 외부 고객을 자사의 파운드리로 유치할 수 있겠냐는 우려와 ②경쟁사에 비해 부족한 생산 능력, 높은 생산 비용 등이 문제로 꼽힌다.
그럼에도 인텔이 과감하게 파운드리 투자를 이어가는 것은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이 반도체 생산 기지를 적극 유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미·중 갈등의 격화 이후 반도체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느냐가 국가 경제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면서 각국은 어떻게 해서든 반도체 공장을 하나라도 더 유치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인텔은 이런 분위기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19일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총 300억 유로(약 41조 원)를 투자해 최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독일 정부는 이 회사에 100억 유로의 보조금을 약속했다. 인텔은 앞서 16일에는 폴란드, 18일에는 이스라엘에 생산 기지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최종 목표는 '유럽 내 반도체 생태계'의 완성이다.
안방 미국에는 앞서 2021년 애리조나주와 오하이오주에 각각 공장 2개씩을 신설하는 작업에 들어간 상태로 2025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로이터통신에 "아시아에 빼앗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갖추겠다"고 말했다. 다분히 파운드리 경쟁사인 대만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를 의식한 발언이다.
메모리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또한 해외 투자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22일 인도에 8억2,500만 달러를 우선 투자해 반도체 조립 및 테스트 시설을 2024년 말까지 완성하기로 했다. 이 발표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공동 지원을 약속하면서 나왔다. 또한 최근 중국 정부의 제재 조치가 나온 상황에서도 중국 내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시설에 43억 위안(약 7,800조 원) 규모의 투자를 이어가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반도체 업계도 미국 반도체 기업의 행보를 주시하며 역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앞서 SK하이닉스와 대만의 TSMC 등은 미국에 공장을 신설하면서 반도체과학법(CHIPs act)에 따른 보조금 지급 신청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어차피 공급망 재편이라는 과제를 풀어야 하는 기업을 아끼기 위해 정부의 보조금을 마다하지 않겠지만 공장 신설로 인한 운영 비용 증가 등 여러 가지 요인을 따져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