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살해해도 집행유예… "살인죄보다 처벌 약한 영아살해죄 고쳐야"

입력
2023.06.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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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형법 제정 이후 개정 없어
경제적 이유 컸던 과거 상황 반영
"시대 달라졌으니 형량 조정" 지적

형법 제251조 영아살해죄.

경기 수원시 자택 냉장고에 자신이 낳은 아이의 시신을 보관하다가 구속된 30대 여성 A씨가 받는 혐의다.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 적용되는 이 죄의 형량은 10년 이하의 징역이다.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일반 살인죄와 비교해 형량이 현저히 낮다. 이 조항이 신설된 것은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는 영아살해가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는 범죄'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법 제정 때보다 영아살해 행위의 반인륜성이 커진 만큼, 형량을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18년과 2019년 자녀 2명을 출산 직후 살해한 뒤 자택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한 혐의(영아살해)를 받는다. 영아살해는 1년에 10건 내외로 꾸준히 발생하는 범죄인데,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1~2021년 발생한 영아살해 범죄는 98건이다.

A씨 사건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그가 통상의 영아살해범과 다른 특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김성희 경찰대 교수는 8년간(2013~2020년) 영아살해로 선고된 1심 판결문 46건을 분석한 논문('한국 영아살해 고찰')을 2021년 발표했다. 이 논문을 보면 영아살해 가해자 46명 중 45명(97.8%)은 미혼모였고, 이 중 미성년 가해자가 8명이었다. "왜 범행을 저질렀느냐"는 물음에 가해자 대부분(87%)이 "혼전임신이 주변에 알려질까 두려웠다"고 답했다.

그러나 A씨의 범행동기는 일반적인 영아살해범의 행태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이미 남편 B씨와 12·10·8세 3남매를 기르던 중이었다. 그러다 2018년 넷째를 임신하자 범행을 저질렀다. 함께 아이를 양육할 배우자가 있었고, 임신 사실을 숨길 이유도 찾기 어렵다.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미 자녀를 키우던 상황에서 경제적 이유로 두 번이나 신생아를 살해했다는 점은 상식적이지 않다"면서 "임신 후 아이를 죽이는 행동을 반복하는 건 일종의 증후군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A씨에게 살인죄가 아닌 영아살해죄가 적용되면서, 법원이 상대적으로 낮은 형량을 선고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2017년 부산에서 냉동고에 아이 시신 2구를 보관한 피고인은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6월 전주지법은 출산 직후 자녀를 화장실 변기 물에 약 30분간 방치해 살해한 20대 여성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영아살해 형량이 낮은 이유는 애초에 이 법이 '살인죄보다 약한 형량을 선고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형법이 제정된 1953년에는 경제적 이유 등으로 영아를 유기하거나 살해하는 사례가 지금보다 훨씬 많았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영아의 목숨에 대한 사회적 관념이 과거와는 판이하기 때문에 영아살해죄 형량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는 "아동 인권 보호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아동학대에 대한 엄벌 인식이 생긴 것처럼, 영아살해도 더는 경미하게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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