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던 중 회사 컴퓨터를 대거 바꾸는 등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기소된 HD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 수사가 아닌 공정위 조사에 대비한 행위였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는 20일 증거인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 등 현대중공업 임직원 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박 판사는 "사건 당시 현대중공업의 주된 관심사는 검찰 수사가 아닌 공정위 조사 대비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들에게 증거인멸의 고의가 명백히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형법상 증거인멸 혐의가 인정되려면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할 의도를 입증해야 한다. 공정위 조사는 형사 절차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증거인멸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박 판사는 "피고인들은 검찰 수사보다 훨씬 중요한 공정위 조사를 방해했지만 증거인멸죄로 처벌하긴 어렵다"며 "이는 하도급법상 조사방해 행위를 과태료 부과 대상으로만 보는 법체계에 따른 부득이한 결론"이라고 덧붙였다.
A씨 등은 2018년 하도급법 위반 관련 공정위 조사를 앞두고 PC 102대, 하드디스크 273개를 교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공정위는 조사를 방해한 현대중공업에 1억 원, 직원에게 2,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지만 별도의 형사 조치는 하지 않았다. 하도급법과 파견법에 따르면 공정위와 고용노동부의 조사를 거부·기피하는 행위(자료 은닉, 폐기 등)는 과태료 처분 대상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날 선고 후 "법원 판단을 존중하며 향후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임직원 교육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