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 이후 한중관계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의 "미국 승리에 베팅하면 후회한다"는 발언으로 분위기가 험악하던 차였다. 하지만 으르렁대던 미중이 대화의 물꼬를 튼 만큼 한중도 관계 개선의 전기를 마련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는 일단 시간을 벌었다. 미중 고위급 소통이 재개되면 우리의 대중 외교에도 ‘공간’이 넓어진다. 중국이 미국의 동맹인 한국을 향해 막말을 쏟아낸 건 미중 갈등이 고조된 상황과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20일 “미중관계를 책임 있게 관리해나가기 위한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미중관계의 안정적 발전은 역내와 국제사회의 평화·번영에도 중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가 이번 블링컨 장관의 중국 방문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표현이다. 문흥호 한양대 명예교수는 “미중관계가 좋아지면 한중관계를 개선할 여지가 생기는 건 맞다”며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실이 논란의 당사자인 싱 대사의 거취에 대해 “중국의 적절한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며 공을 넘겼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즉각 거부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국제관계연구실장은 “중국 입장에서는 블링컨 장관의 방중과 미중 장관회담 등이 끝나고 한숨 돌린 뒤에야 싱하이밍 문제에 대해 후속조치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2020년 1월 부임한 싱 대사는 3년 넘게 대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한중관계를 둘러싼 기류가 미묘하게 바뀌려는 상황에서 한 단계 진전시킬 계기가 중요해졌다. 7월 중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박진 외교부 장관과 친강 외교부장이 만날 수 있는 자리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 남북한,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27개국으로 구성된 ARF에선 아세안+3(한중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등도 열린다.
특히 올해 아세안+3 장관회의는 한국이 의장국인데, 양옆에 중국·일본 장관이 앉는 만큼 조우의 기회가 더 많아질 전망이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미중이 긴장을 관리하는 분위기로 갔기 때문에 한중도 이제 고위급 회동도 하며 물밑에서 소통 작업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ARF를 계기로 한중 장관이 회동하더라도 실질적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문 교수는 “자카르타에서 만나는 건 가능할지 몰라도 양국 간 쌓인 게 많아 관계 개선이 쉽진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싱하이밍 사태와 관련해 조치를 요구하며 ‘공이 중국으로 넘어갔다’고 했는데 중국 입장에선 그렇게 느끼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